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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이 우리나라에 마구 쏱아져 들어오고 있다 보니 일부 ‘이건 좀 아니다.’ 싶은 작품들도 몇 개 섞여 있나봅니다. 제가 일본 미스터리 작가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가이다 보니 그의 작품은 모조리 섭렵하려고 합니다만, 이번에 읽은 <11문자 살인사건>은 일단 읽고 나서의 첫 느낌이 그리 유쾌하거나 여운이 남지는 않네요. 여러모로 불만이 좀 많은 작품이긴 합니다만 일단 읽었으니까 그 감상이나 몇 자 끄적거려 보도록 할까요.

제가 이때까지 접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나 <게임의 이름은 유괴>와 같은 약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그러나 긴박감으로 인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재미있는 요소를 포함하는 것들이고 다른 하나는 <백야행>, <용의자 X의 헌신> 등과 같은 여운이 강하게 남으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군입니다. 아직 그의 작품을 모두 읽어본 것이 아니라서 모르겠지만, 저는 일단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이러한 두 갈래 분류로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11문자 살인사건>은 아마도 후자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때까지 읽었던 진한 여운과 울림을 주었던 <백야행>과 <용의자 X의 헌신>의 감동은 찾아볼 수 없었던 안타까운 작품이었습니다.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 중에서 ‘와, 이거 재밌게 흘러가는데?’ 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부분은 거의 없고 ‘흠. 또 죽어나가는군.’ 이라는 약간은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반전 답지 않은 그런 반전으로서 결말을 제시하는 것도 그리 마음에 들지 않고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중에서 이렇게 오래 걸려서 다 읽은 것은 또 처음이군요. 보통 순식간에 한 권을 다 읽어 치우는 편인데.

남자친구가 살해당한 한 여자.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살해당한 남자친구. 그리고 그의 유품 중 중요한 자료가 도둑맞는 불상사가 일어납니다. 여자는 남자친구의 죽음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하여 주변 인물들을 탐색합니다. 남자친구의 죽음은 1년 전 그가 떠났던 요트여행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여자. 그러나 그 여행에 관련된 사람들 역시 하나 둘씩 살해당합니다. 도대체 1년 전 요트여행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범인은 무엇 때문에 사람들을 살해하는 걸까요.

‘누구도 상상 못한 놀라운 반전이 준비되어 있다.’ 는 소개가 무색할 정도로 반전은 실망적입니다. 좀 막장 반전이라고 해야 될까요. 히가시노 게이고 답지 않은 ‘막장 인물(성격이 더럽다거나 악랄한 게 아니라 너무나도 엉뚱(?)한 행동을 하는 인물’ 도 등장하고, 그 인물로 인해서 사건이 꼬이고 꼬인다는 것에 참 헛웃음이 나오더군요. 범인도 의외긴 했습니다만 좀 어이없었다는 느낌이 좀 있고요.

책 한 권을 다 읽었는데 의문점이 너무나도 많이 남아서 좀 안타깝습니다. 도대체 <11문자 살인사건>이라는 제목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요. 제가 책을 제대로 읽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어디를 둘러봐도 ‘11문자’ 라는 것에 주목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확인하지 못했네요. 왠지 이 소설은 작가가 막 쓴 거 같은데 우리나라에서는 무턱대고 ‘히가시노 게이고’ 라고 일단 들여놓고 보나봅니다. 아무튼 다른 분들께서는 어떻게 읽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히가시노 게이고에 대해 처음으로 실망을 안겨준 책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