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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열치열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뜨거운 것에는 뜨거운 것으로 다스린다는 뜻이죠.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만 더운 날씨에 뜨끈뜨끈한 삼계탕을 먹고‘시원하다~’라소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를 할 수가 있죠. 그런데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데도 이와 비슷한 요법이 있다고 합니다.‘동종요법’이라고 하는 의료분야인데, 이것은 인체에 걸린 질병과 유사한 증상을 일으킴으로서 병을 치료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자면 암을 치료하기 위해서 암을 유발시키는 방사선을 쬐여 주는 거라고 생각하면 될까요. 아니면 백신을 접종함으로써 인체의 면역기능을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할까요. 아무튼 이 동종요법은 이종요법(일반적으로 먹게 되는 약?)과 함께 서양 의학의 큰 틀로 자리 잡은 학문입니다.

재밌는 것은 이 동종요법은 사람을 체질상으로 나눈다는 것인데, 탄소형 인간, 불소형 인간 뭐 이런 분류가 있다고 합니다. 동양의학과 상통하는 점이 있는데 아마도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으로 나누는 사상의학과 비슷한 것 같네요. 탄소형 인간은 어떻고 어떻고 하지만 어떤 점이 단점이다. 불소형 인간은 체형이 어떻고 성격이 어떻고 어떻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결정지어버리는 것은 우리나라의 별자리나 혈액형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 처럼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리지만 서양에서는 그 효과를 입증 받아 왔으니 이거 믿자고 하니 꺼림칙하고 안 믿자니 권위에 도전하는 것 같고 참 애매하군요.

소설 <악은 악으로>는 이 동종요법을 소재로 한 스릴러입니다. 어느 동네에서 코르디에라고 하는 의사가 살해됩니다. 내장이 삐죽 드러나고, 손톱과 치아가 모조리 뽑히고, 등에 빼곡히 못이 박혀 있는 그로테스크 한 시체. 시체의 주변에 범인은 증거를 남깁니다. 형사 레오 디스와 프로파일러 뤼디빈은 이 기괴한 범죄를 조사하던 중, 현장에 남겨진 증거물들이 동종요법의 약물임을 알게 됩니다. 범인의 살인은 멈추지 않고, 더욱 놀라운 것은 현장에는 예전에 불타버린 것으로만 알고 있던 형사 레오 디스의 어린 시절 물건들이 버젓이 놓여 있다는 것. 과연 레오 디스 형사와 이 기괴한 살인사건은 어떤 관계가 있으며, 범인은 누구이며 살인의 동기는 무엇일까요.

프랑스 추리 소설은 좀 익숙하지 않은 편입니다. 아마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말고는 거의 접하지 못했으니 그렇기도 하겠지만, 뭐라할까... 좀 난해하다고나 할까요. 약간 시적인 표현들도 자주 등장하며,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들이 자주 등장하고, 프랑스어로 언어유희까지 하고 있으니 읽다가 가끔씩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듭니다. 특히 소설 중에 등장하는 ‘누운 자’와 심리학자와의 대담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참동안 생각에 빠지게 만듭니다. 분명히 사건과 관계가 있으니 꼼꼼하게 읽어야 하지만, 그것이 좀 어렵다고나 할까요.

소설의 특이한 점은 형사의 시점과 범죄자의 시점이 따로 구분되어 서술되어 있다는 것인데, 후반부로 갈수록 시점은 서서히 가까워지다가 결국 형사의 시점으로 합쳐집니다. 그런데 소설의 엔딩이 참 애매합니다. 속 시원한 결말이라기보다 무언가 아쉬움이 크게 남는 엔딩이었는데, 소설가가 그것을 의도하고 집필을 했을지라도 읽은 저로서는 좀 찝찝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네요.

비록 난해하긴 합니다만, 시체의 묘사나 범죄의 묘사는 매우 뛰어난 편입니다. 다른 부분에서는 비록 집중력이 떨어져도 시체 묘사장면만 나오게 되면 정신이 들 정도로요. 요즘 스릴러 소설들이 잔혹함과 그로테스크 함으로서 독자를 사로잡고 있다고 하는데 <악은 악으로> 라는 소설 역시 마찬가지네요. 범인의 정체는... 흠, 힌트만 좀 드리자면, 약간 진부한 설정입니다. 이미 이런 트릭을 사용한 영화나 소설을 매우 많이 접해버렸기 때문에... 좀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