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클래식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는 그것이 대단한 무언가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도 아니고 고급스럽기 때문도 아니고 단지 음악을 들으면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고 무미건조한 삶에 단비를 뿌리는 듯한 느낌 때문이다. 하루 종일 소음과 공해 속에 살다 집에 들어와서 방 안의 텅 빈 공간을 음악으로 채우고 그 안에 가만히 누워 있을 때의 느낌은 풍진 세상을 등지고 산 속에서 맑은 공기로 숨쉬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음악감상이 클래식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클래식 뿐만 아니라 좋은 음악을 들을 때면 같은 느낌이다. 단지 내 취향 자체가 쿵쾅대는 메탈이나 기계음으로 포장된 대중가요나 팝보다는 클래식같은 선율을 가진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단순히 내가 좋아한다는 것 이상도 그 이하의 이유도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클래식은 약간은 눈쌀을 찌푸리게 한다. 공연장에는 너도나도 정장을 차려입고 꽉 막힌 공간에서 엄숙한 종교미사를 드리는 듯한 분위기에서 공연이 이루어진다. 그것이 신앙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지만.. 글쎄.. 클래식이 과연 신앙일까? 흔히들 클래식을 인류의 고전이자 위대한 유산으로 생각하며 예찬한다. 하지만 정작 이러한 ’위대한 유산’은 현 시점에서 특수 계층에 의해서만 향유되며 이른바 ’고급 문화’로 변질되기에 이르렀다. 얼마전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김명민이 연기했던 마에스트로 강이 "클래식은 귀족들의 음악이지 평민을 위한 음악이 아니다"라는 말은 아마도 클래식이 놓여있는 위치를 잘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왜 클래식은 길거리에서 공연할 수 없을까? 왜 클래식은 박수치며 웃으며 환호하며 들을 수 없는 걸까?

저자는 이러한 현실을 꼬집으며 클래식이라는 ’신앙’의 허구와 위선을 산산히 부수려 하고 있다. 사실 많은 부분에 있어서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클래식이 인류의 위대한 유산으로 취급되는 바탕에는 서구 우월주의가 들어 있으며 악보의 음표 하나하나의 맞고 틀림에 집착하며 연주자를 죽이는 현실을 꼬집는다. 그 밖에도 ’귀족’이자 ’신앙’으로 존재하는 클래식의 면면을 두드리고 있으며 그 과정을 읽어가는 것이 유쾌하기도 하다.

다만 아쉬운게 있다면 클래식 비판이 도가 지나쳐 이 책을 읽고 있다보면 클래식이 ’쓰레기’가 되어 버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 유럽 중심주의도, 귀족적이며 쉬운 접근을 막고 있고 경직된 음악이라는 점 등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좋은데 그래도 클래식이라는 음악을 좋아서 듣는다면 좋지 않은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월드 뮤직’(개념 자체가 명확하진 않은데)에 대해서는 엄청난 찬사를 쏟아내면서 클래식에 대해서는 단점만을 지적한다. 클래식이 대중으로부터 분리되고 현재가 아닌 과거에 매여 있는 음악이라고 비판하지만 이는 클래식 자체의 음악적 문제점은 아닐 것이다.  월드뮤직이든, 국악이든, 현대음악이든, 클래식이든 다양한 음악세계의 공존과 그 속에서 우리에게 행복을 선사해줄 수 있는 음악을 즐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