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에 들어서면서 거대담론에 대한 반발로 사회사, 문화사 혹은 미시사라는 분야가 역사에 새로 등장했다. 정치사 위주의 역사서술에서 벗어난 이러한 사조는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느냐는 부분에 집중하여 '왕과 영웅들'의 역사가 아닌 '우리를 존재하게 해 준 조상들'에 대한 이야기로 역사의 초점을 돌렸다.
흔히 카를로 진즈부르크의 '치즈와 구더기', 로버트 단턴의 '고양이대학살'이 널리 알려진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보다 조금 앞선 아일린파워의 "중세의 사람들"역시 그와 같은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책에는 중세 이전의 사람들, 농부 보토, 마르코폴로, 마담 애글런타인(수녀원장), 가부장의 아내(14세기의 가정주부), 토머스 베터슨(15세기 양모상인), 토머스 페이콕(직물상인) 등의 삶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드러냄과 동시에 중세 시대를 조망한다.
이 중 마르코폴로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역사책에 언급되었던 '중요 인물'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지만 오히려 그런 점에서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왕이 어쩌구, 영웅이 뭘했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있게된 이유, 그리고 우리보다 앞서 산 사람들의 모습이 더 가치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을 그 당시를 살았던 민중의 삶을 통해 나타낼 때 역사는 단지 우리와는 상관없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나 그저 교양에 불과한 학문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와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넓혀줄 수 있는 학문이 될 수 있을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