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학교에서 배운 한국전쟁의 내용은 이렇다.

일제 패망이 가까워지자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하고 동북아시아 지역에 뛰어든다. 그리고 미국과 38도선을 기준으로 한반도를 분할점령한다. 북한에는 소련의 지원을 등에 업은 김일성 일파가 세력을 장악한 뒤 한반도 공산화를 위해 전쟁을 일으켜 남침한다. 치밀한 전쟁 준비를 해온 북한과는 달리 남한은 이에 대한 대비가 부족하여 낙동강 유역까지 밀려났으나 유엔군의 지원을 힘입어 북진한다. 그러나 북진통일을 눈앞에 둔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후퇴하게 되고 전쟁은 고착상태에서 결국 휴전협상이 성립됨으로써 지금까지 분단상태가 계속되었다는 정도..

한국전쟁의 수수께끼라는 제목의 책은 저자가 밝혀낸 사료적 사실을 바탕으로 논지를 전개한다. 왜 미국은 일제 패망 직전에 소련을 끌어들였는가. 왜 미국은 한국을 에치슨 라인에서 제외시켰는가. 왜 미국은 6.25 발발 직전에 주한미군을 철수시켰는가 등등을 통해 한국전쟁의 이면에 숨겨진 음모(?)를 파헤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에 사실을 맞추어 해석하는 방식을 보면 꽤나 설득력을 갖는다.

저자의 주장에 의하면, 미국은 한반도 전쟁을 통해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의 대결을 표면화시키고 자본주의 진영의 수장으로서 미국의 위상을 확고히 하기 위해 미국이 소련을 이용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즉, 미군이 일부러 한반도 지역에서 소련과 북한의 침략을 손쉽게 일으키기 위해 ’허허실실’의 방법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소련이 주시하고 있는 한반도에 미군은 기껏 일개 보병사단 정도만 남아 있었고 전쟁 발발 후 한달이 채 안되어서 유엔군이 개입하여 압록강 지역까지 북진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이는 미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지나친 적대감과 지나친 음모론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본다. 미국 역시 일본이 그렇게 쉽게 패망하리라는 것은 예측범위 밖의 일이었다. 그들이 놀랐던 것은 독일/이탈리아 군과는 달리 일본군은 포로가되기 보다는 죽음을 선택한다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일본군과의 대결에서 일본군 포로는 대량의 포로가 발생했던 독일전과는 다른 양상이었으며 미국은 이런 상태라면 일본 본토를 공격하기까지 미국의 희생이 생각보다 크리라 예상했다. 더군다나 만주 지역에 있던 일본군과의 전면전을 벌이기에는 미군의 전선이 지나치게 확대되는 것이므로, 사실상 내전상태에서 벗어난지 얼마 안된 중국과 독일에 의해 막대한 피해를 입은 유럽 각국의 지원을 받기 어려운 상태에서 소련과의 공동작전은 미국으로서는 최선의 전략적 선택일 수 있다.

 미국이 에치슨 라인에서 한국을 제외한 것은, 민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이승만 정부의 실정과 전면전을 펼치기에는 결코 유리하지 않은 한반도라는 지형적 특성, 최종 방어선으로 일본을 선택한 전략 등이 총체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즉, 미국이 보기에 한반도라는 지역은 결코 소련과 전면전을 벌이기에 충분하지 않았고 남한에는 그럴만한 역량도 없었던 것이다. 

이 책은 확실히 흡입력을 갖고 있다. 추리 소설을 읽는 듯, 잘 짜여진 구조와 사료적 근거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저자의 의식구조 속에서 지나치게 사실이 짜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울 수가 없었다(마치 로마인 이야기처럼...) 근거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보다 많은 자료를 좀더 다른 시각에서 폭넓게 보지 않는 느낌이다.

미국은 현재 초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을 강화하고 있으며 그에 대적할만한 국가는 없어보인다(조만간 중국이 될 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는 미국식 슈퍼자본주의에 기인하는 부분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과거의 사실을 현재적 관점에서 모든 것을 미국이 계획(음모라고 보는 것이 옳을지도)하고 주도하여 판도를 만들어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음모론적 시각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