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책이다. 얼핏 제목만 보고 시중에 많이 나온 '힐링'이란 단어로 포장한 자기계발서나 에세이류로 생각했지만 이 책은 철학책이다. 독특한 것은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처럼 외국에서 출간된 책이 우리말로 다시 번역되었다는 점이다. 이 책을 보니 독일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돈이면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사회에서 사회구성원들은 맹목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산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서점의 책장에 꽂힌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그 방증이다. 

 

과거 '규율사회'에서는 개개인에게 '넌 ~하면 안돼.' 하는 식의 부정성, 즉 금지가 강조되었다. 테일러가 과학적관리론에서 증명하려 했던 것처럼 인간을 물질적인 유인책으로 통제했을 때 생산성 내지 효율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시대가 있었던 것이다. 이 시대에는 심적억압, 금지, 부인 등에 의해 히스테리를 나타내는 환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오늘날의 정신질환은 이와 다르다. 현대에는 우울증,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등과 같은 정신질환을 겪는 환자가 늘고 있다.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우리는 현재 '성과사회'에 살고 있다. 규율사회는 자본주의에서 구성원이 효율성을 극대화하도록 금지를 강조하던 부정성의 시대였다. 하지만 이것도 사회전체의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를 드러내자 점차 사라지고, 이제는 '넌 ~할 수 있어.' 하는 식의 긍정성이 강조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평소 우리가 생각하는 긍정이나 부정의 단어가 이 책에서는 전혀 다르게 사용된다. 긍정이란 단어는 분명 대부분의 경우 좋은 의미로 사용된다. 하지만, 긍정성이 과도하면 즉, 개인에게 계속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점만을 계속 주입하면 개인은 지치게 마련이다. 그만 하고 쉬고 싶은데 사회는 계속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점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계속 채찍질하기만 하던(이 책에서는 '자기착취'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개인은 긍정성만을 강조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우울증,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등과 같은 질환에 걸리는 것이다.

 

성과사회에서 더 나아가면 도핑사회가 된다.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약물을 복용하는 게 보편화되는 사회가 도래할 것을 저자는 경고한다. 실제로 많은 수험생들이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카페인이 과다하게 함유된 에너지드링크제를 과다복용하는 게 기사화된 것을 본 적이 있다. 과거에 수험생활을 할 때, 함께 공부하던 필자의 친구는 <리미트리스>라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먹으면 놀랄만한 능력을 발휘하는 그런 약이 있었으면 하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타인과의 경쟁에서 승리, 궁극적으로 사회가 바라는 인간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시험에 합격하려는 개인적 욕망을 부채질하는 사회가 그 친구를 지치게 하는 것도 모자라 그런 약을 바라게 만드는 것 같아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