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상실의 시대>이다. 최근 다른 출판사에서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으로 다시 출간되고 있지만 그래도 난 이 제목이 좋다. 주인공 와타나베가 스무 살이 될 무렵 느끼는 허무함, 상실감 같은 것이 제목에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장 친한 친구인 기즈키가 죽고, 기숙사 룸메이트 돌격대는 갑자기 떠나가고, 와타나베에겐 첫 사랑인 나오코 역시 세상을 떠나가니 어찌 보면 이 소설은 소중한 사람들과 이별해야 하는 현실에서 얻게 된 상처 투성이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 상실감이 필자에게도 생생히 전달되는 것을 느꼈다. 결국 와타나베는 현실의 사랑인 미도리에게 다시 연락하는 것으로 소설은 결론을 맺지만, 그럼에도 그 뒷이야기가 궁금하다.  

 

<상실의 시대>는 처음부터 정독을 해도 재미있지만, 아무 장이나 펼쳐서 읽어도 마치 단편소설을 읽는 것처럼 새롭다. 1960년대 후반의 일본의 시대적 배경은 겪어보질 않아서 모르겠지만, 그래도 책을 읽다보면 아련한 그리움이 느껴진다. 요즘처럼 누구나 휴대폰을 가지고 언제라도 상대를 소환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전화를 기다리기 위해 흔치않은 전화기 앞에서의 기다리는 수고로움, 설렘같은 것을 소설 속에서 잘 느낄 수 있는데, 이젠 이런 아날로그적 감성마저 느낄 곳이 많지 않다는 게 슬프다. 현대인들은 편리함을 얻는 대가로 감성을 잃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가끔 해가 질 무렵, 어느 건물의 옥상에 올라서 수많은 빛이 반짝이는 도시의 풍경을 바라볼 때면 소설 속에서 와타나베가 '돌격대'가 사라진 뒤 저녁에 옥상에 올라 반딧불이를 날려보내는 장면이 자꾸 머릿속에 그려진다. 또, 와타나베가 나오코와 지하철에서 재회한 뒤 함께 걸었던 일요일 오후 도심거리의 여유로움이나 미도리와 데이트에서 나누었던 감각적인 대화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 소설에 대해 와타나베가 여자들과 놀아나는 그저그런 소설로 폄하하기도 하지만, 그건 이 소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의 평가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같은 글을 읽고도 느끼는 바는 다르겠지만 적어도 내 곁을 차지하던 사람들이 떠나간 빈자리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느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