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안 읽히는 책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에서 등장인물 간의 대화라는 게 초반부의 배의 선장과 로빈슨 크루소의 대화와 후반부에 로빈슨 크루소를 방문하는 화이트버드 호의 사람들과의 대화가 거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책의 중간쯤에 등장하는 원주민 방그르디(원작에서는 프라이데이)는 말수가 거의 없으니까.

 

이 소설을 읽은 건 아무래도 표지의 바다그림과 태평양이 들어간 제목에 이끌려서였다. 책의 리뷰를 보고 이 책이 대니얼 데포의 원작 <로빈슨 크루소>를 재해석해서 쓴 책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사실 원작인 <로빈슨 크루소>를 제대로 읽어 본 일도 없다. 대강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데 이렇게 지루할 줄이야. 폭풍을 만나 태평양 어느 무인도에 표류한 로빈슨 크루소에게는 배에 함께 탔던 개 한 마리가 유일한 친구(영화 캐스트어웨이의 톰 행크스에겐 배구공이 유일한 친구였으니 그보단 좀 나은 셈이다.) 이다. 소설의 중반부까지는 로빈슨 크루소가 섬에 서서히 적응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는 섬에 스페란차라는 이름을 짓고, 자신이 그 섬의 총독으로 부임한다. 그리고 집을 짓고, 밭을 경작해가며 자급자족적인 삶을 꾸려간다. 이 과정에서 성욕을 해결해 가는 과정도 그려지는데, 무인도에 갖히면 누구나 저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가 무인도 생활에 적응해 갈때쯤 우연히 근처 다른 섬에서 온 원주민들에게서 죽임을 당할 위기의 방드르디를 구출해 함께 살아간다. 처음 로빈슨은 방드르디를 노예 다루듯 한다. 하지만, 점차 방드르디를 섬의 동반자로 대하기 시작한다. 아마 원작과 이 책의 차이는 이 부분일 것이다. 원작에서는 제목도 <로빈슨 크루소>이며 백인 우월주의(영국의 식민주의)를 은연 중에 드러낸다. 이 책은 이와 달리 방드르디를 제목에 내세우면서 이 점을 부인하고자 한다. 

 

결말부는 로빈슨이 섬에 표류한 지 28년이 지났을 때로 화이트버드 호가 섬 근처를 지나고 로빈슨은 마침내 섬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그는 섬에 남는다. 대신 방드르디는 로빈슨 몰래 배를 타고 떠난다.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은 화이트버드 호에서 탈출한 소년에게 로빈슨이 죄디(목요일)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장면이다. 그들이 앞으로 함께 그 섬에서 살아갈 거라는 점은 쉽게 상상해 볼 수 있다. 책의 뒷부분에 이 소설에 대한 해설이 있는데 무슨 논문수준으로 그 양도 참 많다. 읽어보려했지만 쉽게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