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게 삶을 묻다: 삶, 그 후에...

 

 

‘죽음의 시간은 사람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또한 최종 결정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왈가왈부할 수 없소.’ (p169)

 

물에 빠진 여자 친구 말로리를 구하려다 익사 직전에 구출된 네이선. 그 후 맨해튼의 성공한 변호사가 된 그는 그녀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지만 아들 션의 죽음으로 둘은 파경 직전까지 이른다. 어느 날 그의 로펌 사무실에 굿리치라는 의사가 찾아오고 자신이 죽음을 예견할 수 있는 메신저라 한다. 굿리치의 말대로 네이선 눈앞에서 예견된 사람들이 차례로 죽기시작한다. 네이선이 살리려는 노력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리고 굿리치는 그에게 곧 힘든 시기가 닥쳐올거라 예견한다. 절망적인 맘으로 네이선은 자기중심적 자아에서 벗어나 주변사람들을 돌아보기 시작하고, 그의 얼마남지 않은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네이선은 어떤 최후를 맞이하게 될까.

 

이번 소설은 서스펜스와 로맨스가 뒤섞인 반전 드라마다. 그러면서도 현 사회의 이슈를 담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 인간 본연의 운명과 직결된 것일지도 모른다. 죽음, 그리고 마지막 정리들. 굿리치는 네이선을 만난 날, 사자(死者)에 관련된 신화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켈트신화에서 보면 생명들이 저 세상에서 이승으로 내려올 때 백조의 모습을 취하곤 한다오.” (p17)

 

새하얀 백조의 강림! 이는 노란 원반 모양의 천국 왕관을 두르고 눈부시게 하얀 천사모습과 겹쳐진다. <그 후에>는 어찌 보면 두려워서 너무도 피하고 싶은 죽음에 대해 아름답게 승화한 이야기다. 굿리치는 죽음의 메신저 역할을 잘 알고 있었다. 이는 죽음이란 운명에 맞서지 않고 떠나는 사람들의 준비를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하지만 대부분은 그저 곁에 가만히 있어주기만 하는 것이오. 옆에서 환자의 고통과 두려움을 함께 나누는 것이지. 언제든 필요할 때 옆에서 얘기를 들어주는 것 말이오.” (p104)

 

그는 각자에게 주어진 생명의 시간이 끝나기 직전에서야 깨닫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 죽음이란 문제와 연관되다 보니 그런 거야. 죽음이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할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늦어버린 때일거야.’ (p215)

 

하루하루 죽음으로 다가가는 사람들, 하지만 그 얼마 남지 않은 시간마저 두려움과 후회로 가득찬다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그 불상사를 막기 위해 메신저들이 존재하는 것이며 바로 그 준비를 해주려고 의사는 네이선에게 다가간 것이다.

 

이 세상에는 많은 메신저들이 있는데, 사람들이 그 존재를 모르고 있을 뿐이오. (p415)

 

네이선은 철저한 이성주의자다. 그에게 칸트의 철학을 들이민다면 정말 싱크로율 100%일거다. 고로 그는 굿리치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그러한 존재의 부정은 나중에 엄청난 후회를 가지고 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채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점점 흘러간다. 그러나 점점 죽음과 대면하게 되는 네이선은 인생의 모든 물질적 요소가 허무하게 느껴진다. 어느새 그는 점점 사람(?)이 되기 시작한다. (동시에 그의 이성주의는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아이라 바이오크의 <아름다운 죽음의 조건>을 읽어보면 호스피스가 임종을 앞둔 사람들을 도우면서 느낀 점들을 말하고 있다. 죽음 앞에서는 아무 것도 필요없다. 죽음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그 단어 앞에서는 어떠한 증오도, 복수심도, 애증까지도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20여 년이상 왕래하지 않은 골육상쟁기를 겪은 형제까지도 화해하게 만드는 그것! 하지만 죽음은 껍데기와의 아름다운 이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남겨진 사람에겐 서로를 돈독하게 만드는 결속력을 지닌 말인 것이다.

 

죽음 그 후의 생(生)은 알 수 없다. 그 미지의 세계를 넘나들었다는 극소수의 증언자들이 존재하지만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한 말들은 소설처럼 기묘하게 다가올 뿐이다. 또한 그 후의 생(生)이란 생(生)이 아닐지도 모른다. 죽고난 뒤엔 더 이상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득 떠오르는 전래동화가 있다. 스크루지만큼 짠돌이에 왕고집이었던 영감이 사후세계를 갔다와서 개과천선했다는 이야기. 전통적 관념으로 여전히 권선징악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던 얘기였지만 소설 <그 후에>와 연장선상에 놓고 보면 어느 나라든 비슷한 결말로 점철된다. 어쨌든 네이선은 그로 인해 변하게 된다. 물질을 추구하는 변호사가 아닌 주변인들의 아픔을 느끼고 그들을 적극적으로 돕게 된다. 하지만 예견된 운명은 그를 암흑으로 빠뜨린다.

 

결말은 서글프지만 기욤 뮈소만의 언어는 그 시각마저도 아름답게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죽음’과 망자의 곁을 지켜주는 ‘가족’과 ‘주변인’들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끔 한다. 기욤 뮈소의 또 다른 책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에서도 운명과 죽음, 메신저를 언급하고 있다. 이는 그의 중심 키워드다.

 

“당신은 이 한 가지만큼은 알아두어야 할 겁니다. 지금 당신이 하려는 싸움에서 이긴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말입니다.”

(p317,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에서 운명의 메신저 '커티스 네빌'의 말 中)

 

출생에도 선택권이 없던 우리는 죽음조차도 (자살을 제외하곤)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말 그대로 그것은 운명인 것이다. 운명의 수레바퀴 속을 맴돌다 그 속에서 소멸하는 존재들. 그 안에서 샤먼(shaman)의 기능이란 ‘메신저’일 것이다. 그저 등대처럼 묵묵히 예정된 길을 밝히는 것!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죽음과 삶을 부정해선 안 될 것이다. 그 또한 우리가 걸어왔던 길이므로. 모든 것을 포용하고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아름답지 않던가.

 

죽음이 임박한 사람들에겐 특유의 행동이 있다.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고 주변 사람과 일들을 정리하는 것. 죽음과 대면하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내려다볼 수 있다. 네잎클로버의 행운처럼 그토록 잡히지 않던 자신의 삶이 죽는 그 순간 알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지독한 아이러니인가.

 

그보다 더한 고통은 바로 주변인, 특히 친지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일 것 같다. 누구나 예외없는 삶의 공통 키워드인 ‘죽음’이지만 고통의 긴 터널을 지나 임종을 맞는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겐 삶의 공허함이 남아있다. 이 땐 물질적 풍요로움은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렇게 엔트로피(=death, disappearance) 속으로 사라진다.

 

기욤 뮈소는 나에게 너무도 힘든 과제를 안겨준다. 멀게만 느껴지는 죽음이 새삼 저승사자를 보는 것처럼 두렵게만 보인다. 문득 죽음을 통해서 삶을 생각해본다. 나는 어떠한 삶을 살고 있으며 그 삶을 어떻게 아름답게 마무리하여 완벽한 죽음에 다다를 것인가. 이는 아마 평생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있을 것 같다.

 

 

매일 매일 죽음을 향해 가다 마지막 날 거기에 이른다. -몽테뉴 chap.16

그후에, 기욤뮈소, 밝은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