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의 독서기록을 읽고 나면, 그 연쇄작용으로 기록된 책 중 관심이 가는 책이 생기기 마련이다. 독서기록만으로 이루어진 책을 많이 읽지는 못했다. 기껏해야 이제 두 권 정도인데, 처음에 읽은 책은 명사들의 추천도서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데 반해 <뒤적뒤적 끼적끼적>은 다양한 분야의 책을 두루 섭렵한, 한 작가의 집필실 서재를 살짝 엿볼 수 있던 좋은 기회였다. 김탁환 작가의 글은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대부분 역사소설을 쓰셨는데, 아직은 내게 낯설게만 다가오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물론 백탑파 시리즈는 소문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열하광인을 선물 받았기에, 백탑파 시리즈를 처음부터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컸다. 아직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지만.

각설하고, 역사소설이라는 분야에 두터운 팬층을 가진 김탁확 작가가 이번에는 자기의 “영혼을 뜨겁게 한 100권의 책에 관한 기록”이 담겨진 책을 펴냈다. <김탁환의 독서열전-뒤적뒤적 끼적끼적>(제목이 길어서 어느 게 부제목인지 헷갈린다.)이 그것이다. 모두 100권의 책에 대한 개인적 기록으로, 분야가 방대하다. 김탁환 작가의 잡식성에 새삼 탄복[歎服]할 뿐이다. 소설이나 약간의 인문 분야를 제외하고는 잘 보지 않는데, 이 기록에는 과학 분야는 물론이고 시, 자서전, 고전 등 독서의 고수(?)로 가는 길은 멀게만 느껴졌다. 어떤 틀에 의해 비슷하게 기록을 써내려간 느낌도 아니다. 책에 따라 기록을 쓰는 구성도 달라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그래도 작가만의 일관성이 엿보여서 “과연, 작가인가-!”하는 생각도 했다.
100권의 책을 열 가지 파트로 구분했다. 예술, 시간, 일상, 시인, 여행, 한국, 팩션, 삶, 책과 글쓰기, 과학. 각 파트의 중요단어를 뽑으면 대충 저러할 것이다. 소개된 100권의 책 중 한 권은 읽었고, 한 권은 읽다 말았다. 100권 중 말이다. 처음 보는 책과 작가들이 꽤 있었던 것 같다. 그중에서 유일하게 세 권이나 소개된 아니 에르노와 김현의 <말들의 풍경>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여기서 기록된 아니 에르노의 책은 <아버지의 자리>, <단순한 열정>, <부끄러움> 이 세 권이다. 도중에 인터넷에서 아니 에르노를 검색해보니 더 많은 책이 있더라. 뭔가 내 취향일 것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작가였다. 단순히 김탁환 작가의 기록만 본 것인데도 말이다. 조만간 아니 에르노의 책을 만나봐야겠다고 얼마나 생각했는지 모른다. 훗날 책을 다 읽고 난 후, 지금이라도 이 작가를 만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
김현이라는 이름은 생소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비평가(혹은 작가)라고 하는데, 비평에 대한 책의 한 부분을 본 이후 머릿속에서 계속 맴돈다. “비평이란 문학이 ‘완전한 없음’으로 사라지는 것을 막는 마지막 보루가 아닐까.” (p392)

모든 독서기록이 그러하듯, <김탁환의 독서열전>은 지극히 개인적인 독서기록이다. 김탁환 작가와 같은 책을 읽더라도 다른 느낌이 들 수 있다. 100권에 대해 비평적인 느낌도 없고, 좋다, 나쁘다, 양자택일한 느낌도 드물게 다가온다. 인간적인 면모도 슬며시 보이며 비평가 경력이 있어서인지 정말 세세한 부분 놓치지 않은 무언가가 느껴졌다. 이런 건 일단 읽어봐야 안다. 물론 같은 독서기록을 읽더라도 해석은 천차만별이겠지만. 그래도 한 권정도는 이 독서기록으로 연쇄작용을 얻지 않을까. 무엇을 읽을지 모르겠는 독서 초보자(?)라면, 이런 독서기록의 책을 통해 끊임없이 독서에 대한 갈망이나 동기부여를 키워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독서기록을 읽다 보면 경탄이 섞인 질투 반, 부러움 반이 섞인 감정을 느끼는데, 이 책에 질투는 잘 안 느껴지더라.(아마 100권 읽은 건 고작 한두 권뿐이라 그런 것 같다.) 그저 여기 기록된 책 중 무엇을 읽어볼까, 하는 나름의 독서계획이 상상의 날개를 달았다고 할까. 블로그에 쓰는 나만의 독서기록도 푸드덕푸드덕하고 날개가 달렸으면 좋겠다. 작은 소망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