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11일  

법정스님은 즐겨 들으셨던 비발디의 사계, 봄의 나래를 타고  먼 여행을 떠나셨다.

그 분이 남기신 글을 접할 때마다 난향같은 맑음이 다가와 스님을 뵙는 듯 하다.

 

샘터사에서 정리한 <텅 빈 충만>은 1986년부터 1989년 6월 까지의 글을 모은 책

으로 스님은 책 머리에 그때로부터 15년 전 싶었던 후박나무 이야기를 싣고 있다.

처음 묘목을 갖다가 심었을 때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인데

지금 그 그늘에 앉아 조촐하고 맑은 시간을 보내면서 덕을 입고 있다는 후박나무

15년 동안 가꿔왔던 후박나무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나무들은 결코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말씀과 함께 이에 비하여 우리들 사람의

그늘은 얼마나 엷고 빈약한가를 탄식하신다.

사물과 만나는 사람, 작은 일에서까지 교훈과 가르침을 걸러내시던 법정 스님이

불현듯 더 그리워진다.

 

<텅빈 충만> 이제 스님의 마음과 얼이 깃들었던 글들을 다시 펴 놓고 시간이 지나

도 변치 않는 참된 깨우침의 만남을, 깊은 만남을 하고 싶다.

현대에는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서 정보의 홍수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스님은 이 책에서 경종이 되는 말씀을 들려주신다.

"외부에서 빌어온 지식이나 앎은 자신의 심성을 계발하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때로는 결정적인 독소가 될 수 도 있다.   자기 눈

으로 몸소 확인하지 않고 흔히 남의 눈을 빌어서 사물을 인식하고 타인의 주관에

의해 가치판단을 해버리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오류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

다도 먼저 일상생활 속에서 선정과 지혜를 닦아야 한다...... 선정과 지혜는 결코

선방의 정진에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명심하기 바란다.

(249쪽~250쪽)

 

시간이 지나도, 거듭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주옥같은 가르침이 수상록안에

담겨 있어 단숨에 일고 접을 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들어 더욱 스님의 우려섞인 말씀을 생각하게 된다.

"요즘 우리 사회는 어느 계층을 가릴 것 없이 인간의 고결한 품성이요 질서인 이

예절과 신의가 무너져가고 있다.   요즘의 우리를 가리켜 누가 동방예의지국의

후예라 할 것인가.  걱정스런 일이다." (314쪽)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존경할 수 있는 현인, 우리 곁에 머물고 있는 그 분의 글들을 통해서

우리 삶을 향기롭게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