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같다’ ‘비슷하다’란 말엔 이미 다르다는 뜻과 가짜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배우며 익힐 수 있다. 여기서 다르다는 것은 겉모습이고 같다는 것은 마음이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본정신,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진정한 고전, 즉 정신은 지금에 있다. 지금이란 옛날과 대비하여 이르는 말이다. 비슷하단 것은 저것과 비교하여 하는 말이다. 지금 우리가 옛날이라 생각함은 그때의 지금이었을 뿐, 훗날까지도 옛날로 살아남으려면, 바로 지금 여기에 충실하여야 한다. 또 옛 것을 배울 것은 배우되 무작정 따라하여선 안 된다. 적절히 지금 여기에 맞추어 써야한다. 단, 그것을 담는 그릇인 형식은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물을 보는 눈이 진실하기만 하면 되는 것, 즉 마음자리 공부가 우선되어야한다.

그러나 연암의 시대에는 우리의 시대에는 옛 것의 겉모습만, 형식만 취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옛 사람의 정신은 어디가고 망령만 득실댄다. 겉모습만 따르는 습관이 오래되어 성품이 되고 습속이 되어버리면, 타성에 젖어 기득권이 지켜주는 그늘에 않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게 된다. 그것이 편하고 삶을 누리는데 안락하기는 할 것이다. 연암의 시대나 지금이나 지식인의 역할을 포기한 채 이명에 도취되어 뽐내고, 제 코고는 습관을 누가 지적하면 발끈 성을 내는 자들이 있다.

역易은 궁하면 변화해야 한다. 변화해야만 통할 수 있고, 오래도록 살아남아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변화를 잊고 이미 낡은 기호, 죽은 사상에만 집착하여서는 안 된다. 고정불변의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연암은 획일화된 가치척도로 세계를 규정코자 하는 결정론적 세계관을 거부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 설명할 수 없는 현상도 있으며, 그것을 인정하여야 한다. 한 가지 사물 안에도 온갖 이치가 깃들어 있으며, ‘하늘의 이치’ ‘하나의 법칙’이라는 것도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사물은 살아있으며, 사물의 질서는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하나의 기호는 하나의 진실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또, 기호와 기호사이의 필연적인 관계도 없다. 기호는 살아있다. 시대가 변하고 상황이 변함에 따라 기호는 여러 가지 의미로 통합, 분할하면서 생명력을 유지한다. 순간의 기호만을 보는 인간의 사변적 지식이 얼마나 하찮은지 연암은 이야기하고 있다. 살아있는 이미지들 속에서만이 삶의 정신은 빛을 발한다.

이런 만고불변의 법칙이란 존재하지 않기에 내 눈의 협소함을 의식하고, 내 눈의 허상을 믿지 말아야 한다. 넓은 세상의 다양함을, 나와 다름을 인정하라. 남과 비슷해지려 하지도 말라. 좁은 사대주의에 나를 꿰맞추어 그 틀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밖의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시류만을 좇다보면, 이미 나는 어디에도 없다. 나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다양한 나를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또 눈과 귀는 마음을 어지럽게 한다. 눈과 귀를 닫아라. 대신 마음의 문을 열어 맑은 마음을 가져라.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함과 처녀와 같은 순수한 진정으로 세상을 보아야 한다. 마음을 맑게 하여 받아들일 줄 알고 시대에 맞게 변화할 줄 알아야 한다.

글쓰기나 독서 방법도 위와 마찬가지다. 글 하는 자는 참됨을 추구하여 그 뜻과 내 생각을 남에게 오해 없이 충분히 전달하면 될 뿐이다. 즉 그 속에 진정성이 있느냐의 문제이지,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면 이는 병증인 이명이다. 남이 먼저 알았다고 화내는 코골이도 문제이다. 내 이명에 현혹되지 말고, 내 코골기를 직시하는데서 글 하는 자의 마음을 마련할 수 있다. 독서를 함에 있어서는 책의 지식을 소화해 낼 수 있도록 바른 마음바탕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게 의식이 있는 독서로, 내 것으로 체화되게 하려면 책을 보는 거리가 필요하다. 그렇게 넓은 독서가 하나의 초점으로 집약되어, 오성을 열어주는 주체적 각성으로 변모할 때 창조의 원동력이 된다. 보고 못보고, 보이고, 안보이고는 상대적인 것이다. 제 중심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 하지마라. 명심, 맑은 눈 그리고 깨달음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독서는 죽은 독서다.

연암은 또한 중용으로 살기의 어려움, 실천의 어려움, 이해시키기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문장 하는 방법도 이와 같아서 옛 것과 지금 것 사이에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알맹이에 충실하고 훌륭한 정신의 본받기라 말한다. 옛것을 본받더라도 오늘에 맞게 변화시킬 줄 알고, 새것을 만들더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하여야 한다. 즉 옛것의 형식, 껍데기가 아닌 원리,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 옛것이라고 무조건 버릴 수 없는 것이, 낡고 해묵은 것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새것을 인정하라. 옛것이 시대가 바뀌면 그 해석과 적용에 논란이 생기게 마련이다. 옛 사람이 남긴 글은 옛사람의 쭉정이일뿐 그대로 금과옥조가 아니니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연암은 법고와 창신의 조화로운 결합을 말한다. 그러나 이 또한 중용처럼 어렵다.

연암의 문체는 늘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산 고문’이었다. 그렇기에 그 시대 연암 문학의 잠재적 폭발력은 엄청날 것임을 정조도 알았을 것이다. 정조는 연암에게 문체 변화의 책임을 물어 반성문을 쓰게 했다. 연암은 세상을 위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지우들이 제 스스로 세상을 버리게끔 만드는 현실에 대한 울분을 토로하고 있다. 젊은 시절엔 세상에 대한 의욕이 충천했건만, 시대의 변화에 미치지 못하는 구태의연한 이념에 사로잡힌 조선에 대한 안타까운 현실은 세상을 향한 뜻마저 사늘히 식어버리게 했다. 일부러 열하를 찾아 갈 정도의 적극성을 매몰찬 방관으로 돌아서게 했다. 시대의 극단적 평가의 엇갈림 속에서 연암의 우울과 절망의 깊이를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마는, 그 산 고문 속에, 힐난의 넋두리들 속엔 풍류와 여유가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