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에게 죽음은 자신의 삶의 일부로 항상 짊어지고 가야 할 물음표일 것이다. 죽음에 대한 탐구는 사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뇌로부터 시작된다. 인류가 살아오면서 남겨진 자취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 역사라면, 죽음에도 역사가 있다. 「춤추는 죽음1」은 기독교가 국교로 지정된 중세 초기에서부터, 과학의 발달로 유물론적 관점이 대두되는 바로크시대의 근세 초까지 유럽 역사 속에서의 죽음에 대한 회화적 역사 보고서다. 이 책은 기존 서양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동양과 다르듯이, 죽음에 관한 관념 또한 다름을 보여준다. 관념의 변화를 각 시대의 각기 다른 화가가 어떻게 표현하였는가를, 도상적 지표들을 찾아 설명해 주고 있다. 그 설명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천여 년의 삶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중세 초기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에 죽음의 상징이 없다. 따로 지옥도 필요 없었다. 십자가에 죽은 예수가 부활하여 죽음에 승리를 거둔 이후, 죽음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여겨졌다. 죽음은 패배자였다. 공동체가 지켜보는 가운데서 행복하게 죽은 자는 장미정원에서 정신, 육체 모두 세계의 종말이 올 때까지 잠을 잔다고 여겼다. 세계의 종말은 즐거운 날이었다. 그런데, 부활 후에는 심판이 기다리고 있었다. 누구는 영생에 들어가지만, 누구는 영벌에 들어가야 한다. 어느새 예수는 악인에게 영벌을 내리기도 하는 재판관이 되어있는 것이다.

그 후 사람들은 서서히 죽음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 심리적 불안감은 지옥의 묘사에서 잘 드러나 점점 더 끔찍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이교도나 범죄자에게만 해당되었던 지옥이 이젠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것이 되었다. <최후의 심판>의 날은 부활하여 진노한 예수에 의해 수도사나 구원받은 자도 지옥으로 갈 수 있는 두려운 날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 특수한 날, 다름 아닌 내가 죽는다는 특별한 사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영육이원론은 중세 전성기에 조명되기 시작하여 한없이 멀게만 느껴지는 부활과 심판을, 육체가 아닌 영혼의 구원으로 강조하게 되며, 이때 마카브르가 등장한다. 썩어가는 시체는 죄인의 표시로, 신 앞에 자기가 지은 죄를 겸허하게 고백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젠 인류가 구원받는 부활, 심판 받는 날이 아닌, 한 개인의 죽음의 심판, 부활의 날을 묘사하기 시작한다. 범인류적, 전 우주론적 <최후의 심판>은, 이제 개인의 심판인 조그만 법정으로 나타난다. 옥좌에 앉은 심판자의 모습은 사라지고, 단지 천사와 악마의 싸움으로 축소되어 나타난다. 심판이 나의 문제가 된 이상 나의 죽음에 맞서 싸우기 위해선 개인적 전략이 필요하다. 아르스 모리엔디! 이 ‘죽음의 기술’은 후로 갈수록 점차 심리극의 표현으로 변해간다. 저울을 둘러싼 천사와 악마의 싸움은 마음속으로 자리를 옮기고, 선악의 외적 갈등. 우주론적 갈등은 내면적. 심리적 갈등으로 변화한다.

<3인의 생자와 3인의 사자>는 150여년을 지나면서 귀족적 초연함은 점점 사라지고 죽음은 서서히 야성화하며, 죽음에 대한 솔직한 거부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나마 서로간의 대화가 사람들에게 죽음에 대비할 정신적, 시간적 여유를 준다. 메멘토 모리! 이 ‘죽음의 상기’는 귀족이나 왕들의 것에서 사회의 모든 계급, 계층에 이른다. 이교도들까지 합류시킴으로써 죽음은 그 지배력을 세계적, 우주적인 차원으로까지 확대하게 된다. 또 미라가 서서히 썩어가는 트란지로, 나중엔 해골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죽은 자들은 서서히 의인화한 죽음으로 성격을 바꾸어간다. <죽음의 승리>에서는 죽음의 맹목성, 부조리를 표현한다. 기습과 일방적 학살만이 있을 뿐이다. 준비할 틈도 없이 들이닥치는 죽음의 신속성과 잔인함을 강조한다. <죽음의 춤>은 그 시대 모든 계층이 죽은 자와 춤을 춘다. 우리 모두 죽을 수밖에 없다. 죽음 앞에서는 특권이 없다는 것, 죽음 앞에선 모두 평등하다는 것이다. 각 인물들은 모두 자신 앞에 다가 온 죽음을 원망하나, 이내 체념해버린다. 그러나 이런 초연함과 순응적인 태도는 점점 개인주의화 되면서 조금씩 불안감과 반항으로 바뀌어 간다. 이 반항에서 죽음은 사람들을 삶에서 강제로 떼어내기가 점점 더 고약스러워 진다. 중세 후기로 갈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현세에 애착을 갖게 된다.

바로크시대는 개인주의화의 완성의 시대이기에, 진정한 나의 죽음의 시대이다. 이 시기에 이르면 죽음은 완전히 야성화하여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이제 나 홀로 죽음에 대항해야 한다. 신앙심은 예전만 못하다. 죽음에 대한 전략에서의 변화가 생기게 된다. 이제 시체는 더 이상 트란지가 아니라 산뜻하게 썩은 해골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중세의 마카브르는 회개의 상징이거나 죽음의 사자였다. 그러나 이제 바니타스는 ‘덧없음’의 상징이 되어버린다. 삶의 덧없음을 상징하게 된다. 천국은 더 이상 현실이 아닌 단지 바람으로만 존재할 뿐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삶의 무상함 앞에서의 우울함뿐이다. 바니타스의 해골은 그저 모든 것을 무로 되돌리는 신의 섭리의 상징일 뿐이다. 신마저 대자연으로 대체되어 대자연의 섭리를 상징하게 된다. 종교성을 잃어버린 세속화한 바니타스, 멜랑콜리가 여기서 나타난다.

또 한편 바로크 시대는 죽음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려는 움직임도 강하게 일어나, 시체의 해부가 유행처럼 번져갔다.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그 정체를 밝히려고 한다. 이 시대 테마 중 <죽음의 춤>에서 유래된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결합은 차츰 그림 속의 여인들을 더 관능적으로 묘사해 간다. 죽음은 사랑이 되고, 시체는 정욕의 대상이 된다. 사디즘과 마조히즘, 엑스터시와 고통,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결합의 시대가 바로 바로크이다.

죽음에 대해 갖게 된 커다란 공포, 시체에 대한 맹렬한 관심, 양자는 모순적이다. 멀고도 가까운 죽음이다. 이제 죽음은 중세의 언제나 밖에서 찾아온 삶에 가해지는 외적인 강제가 아닌, 바니타스를 초상화 뒷면에 그린 것처럼 삶의 다른 한 측면이 되고, 삶의 내면으로 자리를 옮겨 삶의 본질이 된 것이다. 이상향으로 일컬어지는 아르카디아에까지 죽음이 있다. 이 피할 수 없는 진리 앞에서 목동들은, 사람들은 우울함에 잠긴다. 죽음은 이제 내적 심리 속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으로 1권은 마무리가 된다.

 춤추는 죽음1」을 통하여 중세초기에서부터 바로크시대까지 서양의 죽음에 대한 인식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았다. 이는 각 시대마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인간의 도덕적 삶에 기독교적 삶이 더하여짐에서부터, 그것이 더욱 더 강조된다든지, 반대로 삶의 덧없음에 멜랑콜리적 우울함이 강조되는 형태로 나타났다. 서양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역사는 오랜 세월동안,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요구되는 도덕관. 윤리관에서 각 시대의 변화를 통하여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삶과 죽음에 대하여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전통적으로 우리의 관념과 연결되는 인간적인 고찰의 단절이 너무나 아쉽다. 선조들로부터 이어져 온 것들은 산업사회, 자본주의경쟁사회를 갑자기 받아들이면서 급격한 변화에 의해 20~30년 전까지의 전통도 지금 내게 이어지는 것이 없다. 우리의 과거에 뿌리를 두고 우리의 인식에 맞게 변해가야 할 것들이 너무 갑자기 변해버렸다. 망자를 위한 예쁜 꽃상여는 어린 시절 내 기억 속으로 가라 앉아 버렸다. 그 꽃상여에는 많은 의미들이 담겨 있을 텐데, 이전 시골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어버렸고, 그 의미 또한 모른다. 모두가 장례식장으로 간다. 축복받은 아가의 탄생도 모두가 산부인과로 간다. 집에서 아기를 낳고 받을 수 있는 노하우를 잃어버렸다. 언제부터인가 다른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할머니, 어머니, 나로 이어지는 연결의 고리는 어느새 자본주의라는 검은 그림자에 의해 획일적인 모습으로 우리의 삶의 다양함을, 고리들을 분리시켜 버렸다. 획일적인 사상, 자본의 커다란 지배력에 의해 우리의 삶이 살아지고 있다.

천여 년의 서양의 죽음의 역사를 읽으면서 우리의 세대 간 연결고리의 끈김이 없이, 다양하고 다채롭게, 우리의 인식과 관념의 변화에 맞게 살아간다면 좋지 않을까하는 바램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