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동양신화 1 / 정재서 / 황금부엉이

 

신화라 하면 먼저 그리스로마신화부터 떠올리게 된다. 그만큼 동양신화는 접할 기회가 흔하지 않다. 「이야기 동양신화1」은 우리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생소한 동양신화를, 서양의 신화와 비교하며 이야기해주고 있어 이해가 쉽고, 그림도 많아 읽기에 수월하다. 각 민족의 신화는 역사 이전의 전설로서 그 지역문화의 본질이며, 고유한 사고방식을 내포한다. 신이란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은 자연의 힘과 동일시되기도 하고, 때론 자연의 힘을 지배하기도 한다. 이런 신들을, 자연현상들을 인간의 행동으로 변형하여 만들어진 이야기가 신화다.

이 세상은 혼돈에서 시작되었다. 달리 말하자면 혼돈은 모든 것을 창조한 힘의 원천이 된다. 그 혼돈의 시기에 시간이 끼어들면서 세상의 질서가 새롭게 창조된다. 혼돈이란 인간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연이다. 동양신화 최초의 신인 혼돈의 신 제강과, 거인 반고는 자연에서 태어났다. 저절로! 아무것도 없던 혼돈에서 유로, 즉 인간의 세상이 태어난 것이다. 특히 자연 생태적 순환의 과정을 그리고 있는 거인 반고의 죽음은 노쇠해 죽은 뒤 몸이 썩어 대지에 흡수된다. 동양신화의 신은 자연과의 조화라는 통합적인 사고방식에 의해 태어난 것이다.

태초의 여신 여와는 대모신, 대지모신으로서 흙으로 인간을 빚어낸다. 그러나 후대에 가미된 것으로 나중엔 흙을 사방에 멋대로 흩뿌려 천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만들었다 한다. 이는 신분의 차이를 나타낸 것으로서 사람은, 한 집단은, 한 국가는 타인 위에 군림하고, 지배하는 것을 신화로 정당화해버린 것이다. 또 위대하고 거룩한 여와를 오빠 복희와 결혼시켜 여성중심의 모계사회 전통에서 남성중심의 가부장적사회로 변화를 보인다. 독립적이며, 자율적 존재인 여신을 유교의 틀에 맞춰 격하시켜버린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화엔 홍수가 많이 발생한다. 이에 대해 서양에선 인간에 대한 신의 분노의 표출로 징벌의 성격이 강하다. 이런 징벌과 구원은 신의 의지에 의한, 이미 예정된 도덕적, 목적론적 느낌이 강하다, 반면 동양에서 홍수는 순수한 자연재해이거나 신들끼리의 전쟁 등 징벌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한다. 이후 인류의 재창조는 살아남기 위한 생물학적 본능으로 근친상간이라는 인위적, 도덕적 금기까지도 초월하게 한다.

죽음과 형벌의 여신 서왕모는 서쪽의 여신으로 반인반수의 모습을 하고 있다. 서쪽은 해가지는 곳, 어둠과 죽음의 땅이다. 죽음을 관장하기에, 그 반대인 영생과 불사의 상징이기도 하다. 후대엔 생명의 여신 이미지가 많이 부각되어, 미의 여신으로까지 변형된다. 서양 신들은 주로 아름다운 인간의 육체로 표현되는 반면, 동양의 신들은 반인반수의 자연과 연결된 형태로 미와는 상관없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자연의 대변인인 것이다.

각종 신들의 출생경위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우선 대부분 신화학자들의 지지를 받는 것으로, 신화 속 상상의 존재를 후세의 역사가들이 실제로 있었던 인물들처럼 역사화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또 하나는 고대에 실제 존재했던 우명 인물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신격화 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것은 잘못된 신화 해석방식의 사례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 주장에 더 익숙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양신화 초기의 신들인 제강, 반고, 여와, 서왕모 등의 신들은 익숙하지 않고, 그리스 로마신화는 나와는 다른 나라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강해서일까? 반면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영웅들은 국사로 배우기도 하여 친숙하고 또 거기에서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어서 그렇게 생각되어지는 것 같다.

고구려 벽화에서 많이 본 불, 태양, 농업, 의약의 신은 소머리를 한 염제이다. 이후 등장한 뇌우, 물의 신인 황제와의 싸움에서 진 염제는 남방의 신으로 물러나고, 우주의 한가운데를 지배하는 신은 이제 황제가 되었다. 또 염제의 부하인 치우, 형천, 공공과의 전쟁도 모두 황제가 승리한다. 황제의 승리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한다. 자유롭게 공존했던 신들의 세계가 좀 더 강한 신에 의한 지배의 시대로, 중심의 시대로 변함을 의미한다. 거룩하고 엄숙한 황제의 지배는 중국인의 자존심이자 정체성으로, 중화사상으로 정치적. 민족적 도구로 변모된다. 또 한나라 이후 유교를 국교로 정하면서 더욱 예와 질서존중의 입장에서 신화를 각색하게 된다고 한다.

책을 읽다 보면 동이계 종족의 신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 동이계 종족이 대륙에 먼저 진입하여 문화를 이룩하였다고 한다. 인간들에게 친절했던 염제, 서방의 신 소호, 수렵의 신이자 동방의 신인 태호 등등. 새를 토템으로 숭배하는 많은 신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영웅 치우를 도운 풍백, 우사는 단군신화에도 등장한다. 반면 황제와 전욱 등은 서방출신의 신들로 동방출신의 신들보다 더 나중에 출현한다.

이제 시간은 점점 신들의 시대에서 인류의 역사로 돌아서고 있다. 신화시대 후기는 전설시대 초기로 성군들에 의해 통치된다. 요. 순. 우 임금의 시대가 바로 이 시기로 성군은 영웅과 마찬가지로 반신 반인적 존재, 비범한 존재로 그려진다. 이후 폭군과 요녀의 등장과 멸망, 새로운 왕조의 성립 등은 약육강식의 투쟁의 역사로 들어왔음을, 승리자의 역사임을 보여준다. 그 승리자의 역사에서 신화는 찬탈과 정복을 합리화하기 위한 설화적 장치로 변한다. 요녀들의 등장도 망국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여 여성의 정치참여를 금지하고, 독립적 존재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가부장적 의도가 짙게 배어 있는 것이다. 샤머니즘 바탕의 신비적, 반인문주의적, 자연적인 은나라의 문화는 변방으로 밀려나 훗날 도교로 되살아나며, 고대 중국의 중심엔 이제 현실적, 인문주의적, 이성적인 주왕조가 등장하여 유교를 성립시키게 된다.

서양의 그리스로마신화는 후세로 갈수록 사랑이야기로 심하게 변모되었다 한다. 반면 동양신화를 보면서 씁쓸한 것은 신화 초기의 신비적이고 기이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너무 인간의 정치, 성인군자, 지배자의 이야기 위주로 바뀌어 버렸다는 것이다. 다양함은 사라지고 천편일률적인 효자, 성인, 열녀들의 이야기로 유교적 사상만을 강조한 것 같아 아쉬운 생각이 점점 많이 들었다. 신화나 역사나 어쩔 수 없이 승리자의 신화, 역사임을 인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