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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미국 서부 여행] 세계에서 가장 큰 협곡, 그랜드캐니언

그랜드캐니언은 세계에서 가장 큰 협곡으로 길이 450km, 폭 16km, 깊이 1.6km의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또한 무려 17억 년 전의 선캄브리아대 암석이 발견된 적이 있을 정도로 까마득히 오래된 지층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17억 년이면 지구 나이의 절반에 가까운 세월이다.

그랜드캐니언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수천 년 전이지만, 이곳이 본격적으로 세상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1869년경이다. 남북전쟁 당시 장군이었던 존 파월(John Powell)이 부하들을 이끌고 콜로라도 강 탐험에 나섰다. 전쟁 중에 한쪽 팔을 잃은 파월은 성치 않은 몸으로 보트를 타고 콜로라도 강을 종주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그랜드캐니언과 콜로라도 강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남겼는데, 이를 계기로 그랜드캐니언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하지만 근처 목장주들과 광산업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일은 진척되지 못했다.

결국 1893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을 최대한으로 이용해서 그랜드 캐니언을 국립기념지(National Monument)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랜드캐니언에서 발견된 소량의 선사시대 유물을 보호한다며 유물 보존법을 적용한 것이다. 장엄한 대자연의 대명사 그랜드캐니언을 엉뚱하게도 문화재 보존 명목으로 보호해야 했다니,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의 고뇌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수 있다.

그랜드캐니언의 국립공원 지정 과정은 더 험난했다. 국립기념지에서 국립공원이 된다는 것은 국가가 관리하는 땅이 더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랜드캐니언에 땅을 소유하고 있던 유력가들은 소송을 걸어 이에 강력하게 저항했다. 그러나 결국 법원의 우호적 판결과 여론의 힘을 얻어 1919년, 그랜드캐니언은 결국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그랜드캐니언을 ‘모든 미국인이 꼭 봐야 할 단 하나의 장관(the one great sight which every American should see)’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루스벨트 대통령의 신념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에 도착해 처음 차에서 내리는 순간, 그의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우스 림(South Rim) 지역 둘러보기

매년 500만 명의 관광객이 그랜드캐니언을 찾는다. 그중 절대 다수가 사우스 림을 통해 들어오는데 그 이유는 라스베이거스와 가까워서다. 5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데다 시내 곳곳에서 다양한 당일투어 상품을 신청할 수도 있다. 차량이나 숙소가 없는 사람들도 이렇듯 편하게 올 수 있다 보니, 그랜드캐니언 사우스 림은 매년 11월에서 이듬해 2월 사이만 제외하고 항상 붐빈다고 생각하면 된다. 사우스 림은 해발고도 2,100m가 넘는 지역이므로 호흡기나 심장질병이 있는 사람은 이곳에서 격렬한 활동을 자제해야 한다. 또 높은 고도 때문에 겨울에 상당히 춥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연중 개방하며 겨울에도 눈 때문에 운전에 불편을 겪는 일은 거의 없다.

데저트 뷰 드라이브(Desert View Drive)

많은 사람들이 데저트 뷰 드라이브에서 그랜드캐니언을 처음 만난다. 40km의 이 길 위에 야바파이 포인트, 매서 포인트, 캐니언 뷰 방문객 센터 등 전망대와 전시시설이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전부 구경하려면 반나절 정도 걸린다. 그중 명물은 데저트 뷰에 있는 와치타워(Watchtower)다. 20m 높이의 이 탑은 이 지역 원주민들의 유적을 본따 만든 건물로, 꼭대기에 있는 전망대는 사우스 림에서 가장 높다.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면 탁월한 전망이 기다리고 있다.

허미트 로드(Hermit Road)

그랜드캐니언 빌리지에서 허미츠 쉼터(Hermits Rest)까지 약 13km 정도로 이어진 길이다. 자동차 도로는 12월~2월 사이에만 개방되고 그 외 기간에는 공원 셔틀, 자전거, 도보로만 다닐 수 있다. 데저트 뷰 드라이브와는 달리 호젓하게 그랜드캐니언을 감상할 수 있다. 아침에 허미트 로드 노선 셔틀을 타고 첫 번째 정류장인 트레일뷰 전망대(Trailview Overlook)에서 내린 다음, 허미츠 쉼터까지 걸어가보자. 아침 햇살에 물든 고요한 그랜드캐니언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오직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을 준다. 허미츠 쉼터에서 코코아나 커피 한 잔을 마신 뒤 셔틀을 타고 돌아오면 완벽한 일정이 된다. 다만 한여름에 일출을 찍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셔틀 이용이 불편할 수 있다. 셔틀 첫차시각이 오전 6시 이후이므로 일출을 찍기에는 촉박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