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색다른 장소에서 책을 펼쳐들었다. 단풍이 곱게 물든 나무들이 운치있게

늘어선 공원 벤치에서. 운동을 좋아하는 남편의 성화에 못이겨 따라 나왔지만

날씨도 포근했고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듯이 짙은 구름이 겹겹이 쌓여있어서

책 읽기엔 그만인 날이었다. 게다가 내가 펼쳐든 책속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런 분위기를 너~~무도 알맞게 딱 맞춰주었다. 내가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시절, 나도 아는 오래전 그 이야기 속으로 데려다 주었던 것이다. 맞다. 그래...

그랬지. 책을 읽는지 수다를 떠는지 헷갈릴 정도다.

유리구슬 천 개 모으는 걸 목표로 삼았던 주인공처럼 남자아이들은 구슬치기와

딱지치기에 열중했었다. 예쁜 종이 인형을 사기 힘들었던 나는 종이로 옷을

그려서 갈아입혔고, 친구들과 뛰어다니며 다망구를 했고, 고무줄을 길게 묶어서

놀았고, 작고 둥그런 돌을 모아서 공기놀이를 했었다. 이렇게 친구들과 어울려서

노느라 더운것도 추운것도 잊고 뛰어다녔던 그 때의 나와 공부에 몰리고 컴퓨터와

핸드폰 게임에 열중하는 지금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가끔씩은 저 아이들이 훗날

떠올릴 추억들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지기도 했었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읽어보라고 한다면 뭐라고 할까? 우리들 세대에겐 잊지

못할 추억이지만 우리 아이들에겐 머나먼~~ 별나라의 이야기 같을 것이다. 방학

만 되면 기차를 타고 큰 댁에 놀러갔던 길... 기차를 8시간 가까이 타고 가서 또

완행버스를 타야했고 떠 버스에서 내려선 거의 30분여를 걸어가야하는 길이었다.

그런데도 방학만 되면 으례히 갔던 그 곳엔 우리를 반겨주는 할머니와 사촌들이

있었고, 도시에서 겪어보지 못한 낭만-아궁이에 불을 떼고, 산에 나무하러 가고,

쇠죽을 끓이는-이 있었다. 누군가가 한 말처럼 격세지감이다. 그런 시절이 마치

'옛날옛적에말이야' 하면서 들려주는 이야기인듯 느껴졌던 것이다. 아니다, 

어쩌면 학교 다닐때 우리가 그리도 쓰기 싫어하던 일기장, 어디 두었는지 아예

잊고 있었던 그 일기장을 찾아서 다시 보는 듯한 시간이었다. 딱지치기, 구슬치기

하는 개구장이들의 모습, 왁자지껄하게 동네 골목에서 뛰어놀던 그 때 그 시절의

모습들이 묘하게 가을 풍경과도 잘 어우러져 다시 돌아가 보고도 싶고, 그와는

반대로 세월의 무상함이 쓸쓸한 여운을 남기며 다가왔다. 어른이 되었어도 나는

여전히 똑같은 나인데...

 

소년은철들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