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히 먼 세월이 꿈인 듯했다. 지금에 와서 옛날을 돌아보면 사실도 꿈이며

꿈도 역시 사실이었다. 소치는 굼인 듯한 인연을 떠올렸다. 몽연은 장자의

몽과 불교의 연으로서 소치에게 화연으로 다가왔다.-18

 

노년의 초의를 만나러 먼 길을 온 선비의 질문에 답하듯 기나긴 이야기가 시작된다.

조선 후기 남종문인화의 대가 소치 허련은 자신의 재능을 알아본 숙부의 도움으로,

고향 진도를 떠나 초의선사를 만나게 되었고 초의 선사 덕분에 다산과 추사를 만나서

예술에 눈을 뜨게 되었다. 아무리 재주가 있었다 한들 섬에 묻혀 일생을 살 수도

있었다. 임금 앞에 나아가 그림을 그릴만큼 시. 서 . 화로 명성을 떨칠수 있도록 

이끌어준 스승들을 만날 수 있었다니 그 얼마나 큰 인연이고 행운이었을까. '압록강

남쪽으로 소치 따를 자가 없다'는 칭찬까지 스승인 추사에게서 듣지 않았던가.

인연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소치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 준 큰 스승님들과

말없이 고향에서 집안을 건사한 아내와 일지암에 머물때 우연히 만난 은분이다.

소치를 사모한 죄로 모질고도 모진 운명에 풍파를 겪어야 했지만 오로지 소치만을

위해 정성을 들이는 두 여인. 시골 출신 화가로서 겪었던 과분하고 꿈속 같은 인연

들을 기록한 이야기로 소치를 따라 대둔산을 오르내리고, 추사를 만나러 바다 건너

제주도로, 숨 죽인채 그림 그리는 소치의 모습을 바라보는 선비 사이에서 그리고

방황하던 길들까지 모두 그와 함께 했다. 자신이 품었던 꿈을 펼치며 그가 살고

싶었던 삶,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고향 진도의 운림산방에 머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몽연록'을 쓰는 소치의 모습을 떠올려보라. 

 

그것은 고향도 아니고 부모도 아니었다. 또 다른 인연을 만나 그 인연을 소중

하게 가꾸어 나간 것이 오늘의 소치를 있게 한 것이라는 것쯤 은도 알고 있었다.

-3권 47

책을 읽으면서 소치가 그린 그림, 추사와 초의 글을 직접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만큼 아쉬웠다. 초의선사와 다산의 차

이야기는 이미 몇 차례 접한 바가 있었는데도, 그 장면이 나올때마다 허물없는

두 사람의 인연과 우정도 정말 부럽고 또 부러웠었다. 이야기 속에 푹~ 빠져서

함께 그 분위기를 천천히 즐기고 싶은 욕심과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빨리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이 서로를 이기려 애쓰며 읽었던 책이었다. 제자와 스승

사이를 넘어서 항상 생각나는 사람, 함께 하고 싶은 사람,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삶은 넉넉하고 즐거웠을 것이다. 마치 소치, 초의선사와

추사, 다산, 은분.... 그들과 한 공간에서 신선 놀음이라도 한 듯, 한바탕 꿈이라도

꾼 듯, 시간을 보낸듯한 여운을 오랫동안 간직하게 될 것같다.

 

소치는 섬 구석의 미미한 존재인 그가 누린 영화를 떠올리며, 그러나 모든

것이 한바탕 꿈인 것을 깨달았다. -3권 372

 

꿈이로다화연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