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이름으로, 새 인생을 살고 싶어지는 때가 가끔 있다.. 지금껏 애써 만들어놓은 나의 자리이고, 나의 이름이건만.. 가끔은 그 모든 허울이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사람들이 알아온 나와 진짜 나.. 진짜 새로운 내가 되고자 하여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전의 나를 바탕으로 나름대로 해석해버린다.. 어제가 딱 그런 날이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삶은 아무리 힘들어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살만한 것이라는 낙천적인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그 와중에도 어제처럼 그런 기분에 휩싸일 때가 있다.. 에어컨을 틀면 춥고ㅡ 끄면 후덥지근한 날씨 속에서 하는 일상적인 고민들처럼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찾아왔다..

 

이 책은 에밀 아자르의 책이고, 또한 로맹 가리의 책이다.. 에밀 아자르는 로맹 가리의 가명이었다.. 책의 뒤쪽에 추가해 실린,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을 통해 로맹 가리가 권총 자살 후, 에밀 아자르가 자신이었음을 밝히며 왜 그렇게 가명을 쓰고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새롭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그는 새 이름으로 쓴 소설로 표출하였다.. 새 이름에 거는 기대와 주목, 그리고 본래의 이름이 가졌을만한 편견을 깨고 처음부터- 첫소설의 향수를 안고 다시 시작해보는 것, 이미 완전히 만들어진 틀 속에서 안주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그였다..

 

10살인줄 알고 살아가던 소년 모하메드, 모모라고 불리길 더 좋아하고 애늙은이같은 말을 곧잘 해대는 녀석이 있다.. 엉덩이로 빌어먹는 엄마였다는 것만 알고, 그녀석은 이제는 늙어서 몸도 팔 수 없는 역시 전직 창녀 출신의 로자 아줌마에게 키워진다.. 그녀는 뚱뚱하고 못생겼지만 한때는 아름다웠고 지금도 앨리베이터가 하나쯤은 있는 아파트에서 살만한 자격을 가진 여자였다.. 그러나 그들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7층의 건물에 살고 있다.. 아줌마는 그 육중한 몸뚱이를 오로지 두 다리로 지탱하여 매일 칠층까지 오르내리는걸 힘들어하고, 나중에는 병들어서 그것마저 못하게 된다..

 

※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던 것 같다. 아름답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275)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그들이지만 그들 주변에는 역시나 힘들게 살아가지만 따뜻하고 좋은 이웃들이 있다.. 그들과 부대끼며 모모는 살아가고, 그들을 인종이나 외모나 직업과 관계없이 편견없이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로자 아주머니가 돌봐주던 다른 창녀들의 아이들의 똥꼬를 닦아주는 일도 먹고살기위해서 즐겁게 하게 된다.. 생이라는 것때문에 늙고 비루해져버린 로자 아주머니를 안스럽게 바라보며 인생이란 것을 생각하고, 아래층에 사는 할아버지에게 또한 인생을 배워간다.. 그리고 점점 더 병들어가는 로자 아주머니를 보며 죽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사랑이었다.. 생에 대한, 사람에 대한..

 

※ 모든 좋은 책들이 그렇듯, 이 책 역시 울면서 동시에 웃게 만든다. - 르 누벨 옵세바퇴르

 

자기앞의 생-이란 제법 거창한 제목이었다.. 난해한 철학책 같은 내용일거란 생각으로 단단히 맘의 준비를 하였는데, 10살짜리 꼬마가 화자이다보니, 내용은 정말 쉽고 재미있었다.. 간간이 나오는 그녀석 모모의 말하는 꼬락서니 하고는! 하지만 자기보다 한참 어른을 두고도 인생을 아직 모른다고 말하는 그녀석의 건방진 독백들은 웃음을 자아내지만, 또한 묘하게 슬퍼지기도 하였다.. 어린 나이에 인생을 다 알아버린 모모, 학교도 가지 못한 그녀석은 그렇게 길거리에서 인생을 다 배워버렸다.. 이 책은 머리보다 가슴에 심어준다.. 느끼게 해준다.. 생에 대해.. 사랑에 대해..

 

마지막, [사랑해야 한다]로 끝나는 모모의 독백은- 이 모든 비루함 속에서도 온 마음을 다해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그 녀석의 마음이 나를 울렸고, 그 눈물은 첨가된 <로맹가리의 삶과 죽음>편에서 더욱 진해졌다.. 다시 살고자 하지만 모모처럼 용감하지도, 로맹가리처럼 탁월한 재능을 가진 것도 없는 나는.. 그저.. 이렇게 다시 똑같은 일상을 맞이할 뿐이다.. 하지만 모모도 그렇게 살아왔잖은가.. 살아야 한다, 그리고 사랑해야 한다.............오;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마약 주사를 맞은 녀석들은 모두 행복에 익숙해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끝장이다.  행복이란 것은 그것이 부족할 때 더 간절해지는 법이니까." (99)

 

 정말, 좋은 책이다.. 읽을 때도 정말 좋았지만, 리뷰를 쓰면서 곱씹는 지금 더욱더 그런 생각이 드는, 정말, 좋은 책이다.. 카이렘 (유태어로, '당신에게 맹세한다'라는 뜻이다.. )

에밀아자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