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책을 한 권 만났다.. <지워진 기억을 쫓는 남자> 금방 리뷰 등록을 하려고 찾아보니 이 책이 심리학 책으로 등록되어져 있어서 갸우뚱했다.. 글쎄.. 인간 심리에 대한 묘사라기보다는 뇌과학이나 한 개인의 치유 의지의 기록인 면에서 의학 에세이쪽으로 생각을 했었는데 조금 의외란 생각이 들었다.. 책은 환자 자세츠키의 실제 경험담의 기록과 러시아 심리학자인 '알렉산드로 로마노비치 루리야'박사의 해설이 적절히 섞여 있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머리에 총상을 입고 기억을 잃어버렸던 사람이 25년 동안 절망과 싸웠던 희망의 기록!

23살의 자세스치, 능력있고 희망적인 미래를 꿈꾸며 살던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갑자기 일어난 전쟁 통에 참전하게 되고, 머리에 총상을 입게 된다.. 어렵게 살아나지만, 1943년 3월 2일 예전의 그는 사망했다.. 대신 남겨진 건 더이상 희망에 부풀어 미래를 바라볼 수 없는 쓸모없어져 버린 한 남자만 남는다.. 그는 조그만 파편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과학 기술 전문 학교에서 어렵게 배운 지식은 물론이거니와,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게 된다.. 사물이 반만 보이고, 숟가락을 보더라도 온전한 형상이 아닌 숟가락 끝만 볼 수 있어 숟가락이 수프 속으로 사라지면 몹시 놀라곤 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배변 욕구가 있어도 그것이 어디를 통한 것인지조차도 잊어버렸다.. 그의 세계는 파괴되어져버린 것이다..

책은 207페이지의 비교적 길지 않은 분량이었지만, 주인공 자세츠키의 25년간에 달하는 기록이다.. 처음 병상에서 깨어났을 때의 그의 상태를 생각해 본다면 기록한다는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그만큼 글자 하나하나를 쓰는 것 자체도 힘들던 그에게는 피나는 노력과 힘든 결실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200여 페이지의 기록이 더없이 소중하게 여겨졌다.. 책의 설명에 보니 그는 실제 3000페이지에 달하는 글을 썼다고 한다.. 되짚어가는 과정에서 수정하고 또 하고 횡설수설했던 부분이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박사의 해설이 덧붙여지면서 독자들이 읽기 좋게 정리된 것 같다..

책을 덮고 나니 책의 시작이 떠오른다.. 자세스키가 사고를 당하기 전의 자신을 떠올리는 부분이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평범했다. 지난날의 삶은 다른 사람들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라는 부분이었다.. 특히 뒷부분에서 나는 멈췄다..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그런 것이다.. 지금 내가 어렵다고 징징거리며 투정부리는 일들은 자세스키의 입장에서 보면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일들인 것이다.. 책 중에 그가 이런 기록을 계속 남기는 이유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기록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 스스로의 치유의 이유도 있지만, '총알 파편이 한 인간에게 어떤 끔직한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는지 사람들이 알게 되면, 그들이 가진 것이 얼마나 많은지 깨닫고 감사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라는 이유도 있었다.. 

그가 애써 처절한 25년간의 기록을 남긴 보람이 있지 않은가.. 나는 지금 매우 부끄럽고, 머든지 할 수 있겠다라는 의지가 솟고 있으니 말이다.. 내 조그만 뇌가 잘 돌아가고 있음에 진정 감사하며.. 세상이 온전히 보이고, 내가 애써 쌓아온 기억이 소중히 지켜질 수 있음이 감사하다..

"인간의 삶은 되돌아보고, 진실로 기억되고 적절히 활용되기 전까지는 진정한 삶이 아니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나는 지금 의학적으로는 정상이지만, 내 기억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함으로 소중한 것들을 잊어가는 비정상 상태에 있지는 않은가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