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참 반가운 이름이다.. 나에게는 요즘 컴백한 서태지의 이름을 듣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세상의 한 부분을 당당히 풍미해냈던.. 그리고 어쩔수 없이 나에게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었을 이름들이다.. 나는 그들에 대해 싫다 좋다의 느낌이 아니라 그냥 '인정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이름이 여기 저기서 들려왔던 시간.. 그 시간은 나에게도 소중한 과거이므로.. 그냥 추억에 젖어들게 만드는 그 시대의 '키워드' 같은 것이다..

 

그런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이 <승리보다 소중한 것>이다.. 또한 소설이 아닌 에세이류다.. 이 점도 맘에 든다.. 무라카미 하루키 스스로가 직접 내는 목소리를 나는 처음 접해서 기대를 잔뜩 하고 책을 펼친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취재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을 비교적 상세하게 적어놓고 있다.. 말하자면 일기와도 같은 느낌이다.. 아침 몇시에 기상을 해서, 몇분간 조깅을 하고, 얼마짜리 무엇을 먹고, 어디어디로 이동을 해서, 무엇무엇을 하고, 몇 시쯤 호텔로 돌아와서, 책을 읽었다면 그 책의 내용은 무엇이며, 몇 시쯤 잠이 들었다..라는 식이다.. 올림픽 취재라는 '일'이 중요한 흐름을 차지하지만, 계속 경기가 있지는 않는 법이라 중간중간 한 눈을 파는 그를 따라다니는 것도 즐거웠다.. 시드니를 방문한 이방인 혹은 관광객으로서 바라보는 호주라는 나라에 대한 이미지도 여행 에세이처럼 드러나기도 한다.. 그리고 역시나 나는 한국인이므로 하루키의 책에 등장하는, 개막식에서의 한국과 북한의 동시 입장에 대한 생각이나.. 일본 대 한국의 야구 경기에 대한 그의 해설에 눈이 번쩍 뜨이기도 했다..

 

하루키는 올림픽 경기가 시상식부터 전체적으로 지루했다고 표현하기도 했지만, 관람하는 그의 시선은 정말 인간적이었고 섬세했다고 생각한다..그리고 그의 그런 시선을 읽고 느끼는 나는.. 덕분에 지나간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아주 잘 관람한 것 같다.. 사실 나는 스포츠에 그다지 흥미가 없어(라기보다 전혀 흥미가 없어) 올림픽을 기다린다거나 혹은 경기를 찾아보는 편도 아니었다..ㅋ {금방 말투는 하루키의 책 속말투를 따라해 본 것이다..} 괄호안에 담긴 그의 진심들이 즐거웠다.. 49년생이니 나보다 딱 두배를 더 사신 분이신데, 시드니에 와서까지 빠트리지 않고 아침마다 조깅을 하시더니 그 톡톡 튀는 유머와 냉소의 적절한 조합은 늙지도 않았나보다.. 솔직하고 어쩌면 선을 넘는듯한 직선적인 화법이 나는 참 좋았다..!! 역시 나와 코드가 아주 잘 맞는 분이시다..ㅋ

 

40대의 그를 '참된 사랑'의 아련한 언어로 만났었다.. 이제 막 60대가 된 그를 '참된 인생'의 유쾌하고 감동 깊은 언어로 이제 막 만났다.. 오랜만에 책장에서 상실의 시대를 꺼내들어 본다.. 두 권의 책이 내 앞에 높여있다.. 그냥 막 설레는 느낌이다.. 나의 과거의 추억과 현재를 이어주는 듯한 느낌.. 두 권의 책 속 그의 사진을 바라본다.. 팔자 주름도 굵어지고.. 그는 이제 정말 인생의 참맛을 아는 나이가 된 것일까.. ^^ 나도 그 간격을 매울만큼 지금은 커 온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들이 스친다.. 그리고 이제 지금 한창 열기가 더해가는 베이징 올림픽을 바라볼때도 옛날처럼 메달이나 따야 내 관심이던 것에서 떠나.. 선수들의 땀방울 하나 하나에 소중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것 같아 기쁘다.. 그리고 마침 역도에서 쥐가 나 경기에 임할 형편이 안되었음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스마일맨 이배영의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말한다.. 이 경기를 통해 메달보다 더 중요한 무엇을 얻었다고.. 그가 말하려던 것을 하루키도 말하려고 한 것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