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니시카와 미와는 항상 본인이 직접 쓴 오리지널 각본으로 영화를 만들어오고 있으며, 시나리오를 소설화하여 작가로서도 유명한 분이라고 해요. <아주 긴 변명>은 책으로도 영화로서도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은 작품이지요. 본인이 쓴 시나리오를 다시 소설화한다니 그 열정이 대단한 것 같아요. 작품에 대한 기대도 커집니다.
그렇게 큰 기대를 안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지요.
10년이라는 오랜시간을 아내 나쓰코의 뒷바라지로 유명작가가 된 사치오.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이 앞서야 하지만 그의 마음속엔 아내의 자리는 없는듯 했습니다. 나쓰코는 친한친구와 여행을 떠난 곳에서 버스사고로 목숨을 잃게되는데요. 다른 유족들은 울분을 토하고 제정신이 아님에도 어쩐일인지 사치오는 눈물이 나지않습니다. 경찰의 물음에도 나쓰코가 본인의 아내인지 옆집아주머니인지도 분간이 가지 않을만큼 감정없는 답변들로 가득하지요. 아내에 대해 아는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두 사람 사이엔 어떤일이 있었던 걸까요.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긴 했던걸까요. 아내 나쓰코와 함께 여행을 떠났던 유키, 그녀의 가족은 남편과 아이둘입니다. 사치오는 유키의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그 동안 잊고 있던 자기자신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가게 되지요. 아내와는 나누지 못했던 사랑...그 사랑을 가족이 아닌 새로운 사람들을 통해 깨닫게 되는 사치오를 보며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사치오는 이제야 보입니다. 아내가요...뒤늦게 아내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늘 다른사람의 이야기로 채워졌던 그의 글들은 이제 아내와 자기자신의 이야기들로 채워져 갑니다. 아내가 살아있을땐 왜 그녀를 맘껏 사랑해주지 못했을까..왜 내 자신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을까...이런저런 변명들로 채워졌던 그의 삶에 이젠 진짜 자신을 마주한 인생이 그려집니다.
소중한건 꽉 붙잡으라는 사치오의 말이 떠오르네요.
나쓰코가 나였다면...사치오가 나였다면...이라는 상상을 해봅니다. 내가 남겨진 사람이 되었든, 떠나갈 사람이 되었든...어느쪽이든 후회는 남을 것 같습니다.
사치오처럼 기나긴 변명을 늘어놓으며 그간 최선을 다해 사랑해주지 못한 것들을 후회하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기며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정말 소중한데...그걸 왜 자꾸 잊는걸까요.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오늘도 열심히 사랑하며 살아야겠습니다.


<함께 나누고픈 책 속 글귀>
어차피 별거 아니겠지 하고 우습게 여긴 거.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려다 보이는 세계를 잃어버리는 거지. 세계의 진화 따위보다는 보이는 걸 제대로 보는 게 사실은 더 어려운 법인데. /p.165

"심했죠. 너무 심했어요. 왜 우리는 소중한 것들에게 상처를 주는 건지. 눈에 보이는 신호를 무시하고, 잡았던 손도 놓아버리고. 언제나 기회를 날려버리죠. 왜 이렇게 맨날 헛발을 디디고 모든 걸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지. 정말 끔찍합니다. 책을 읽어도 돈을 벌어도 전혀 현명해지지를 않으니. 언제까지 이런 자신과 마주해야 하는 건지. 이제 넌더리가 납니다. 아주 넌더리가 나요. 정말이지 살아갈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아요." /p.284

살아 있으니까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은 거야. 허접한 생각, 입에 담을 수 없는 한심한 생각도. 그러나 생각했다고 해서 그게 다 현실이 되는 건 아니야. 우리는 말이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세상을 그렇게 마음대로 움직일 수는 없어. 그러니까 자책하지 않아도 돼. 그래도 자신을 아끼는 사람을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되지. 깔보거나 비난해서는 안 되는 거야. 안 그러면 나처럼 돼. 나처럼 사랑할 사람이 하나도 없는 인생이 되는 거라고. 쉽게 헤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헤어지는 건 순간이야./p.306

사랑해야 할 날들에 사랑하기를 게을리 한 대가가 작지 않군. 대신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되는 일도 아니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공존은 상실을 치유하고, 할 일을 늘려주고, 새로운 희망과 재생의 힘을 선물해주지. 그러나 상실의 극복은 바쁜 일이나 웃음으로는 절대 성취되지 않아. 앞으로도 내 인생은 당신에 대한 회한과 배덕의 자책감으로 지배되겠지. 마음속으로 사과한다 한들 용서해주는 당신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아. 그쪽에서 당신이 나를 얼마나 욕하고 동정하든, 그 목소리 역시 내게는 들리지 않고. 인간은 죽으면 그뿐이지. 우리는 둘 다 살아 있는 시간을 너무 우습게 봤어.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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