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져라, 비둘기들』은 이산의 내레이션과 시인 영만의 내레이션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내레이션이 끝날 때마다 등장인물과 작가의 대화 장면이 시나리오처럼 삽입되어 있다. 그 장면이 바로 눈앞에서 진행되는 듯 여겨지고 등장인물들이 항의하는 장면에선 피식 웃음도 나온다.

작가는 소설적 악인인 안타고니스트Antagonist와 긍정적 주인공인 프로타고니스트Protagonist를 상정해 놓고 이 소설을 이끌어간다. 사실 이산과 영만의 내레이션이라는 방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어찌 보면 영만의 시선이 소설 전체를 아우른다고 볼 수도 있다.

이산은 씨름 선수 시절의 부상으로 서번트증후군을 앓으며 계모가 경영하는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다. 영만은 다른 사람을 억압할 줄도 공격할 줄도 모르는, 그만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실래’씨를 사랑하는 시인이다. 영만은 지난 신문을 들춰보는 한의사인 아버지와 늘 비둘기를 포획할 그물을 뜨는 어머니, 그런 식으로라도 ‘희망과 접속해야지만 살아갈 수 있는’ 부모를 두고 있다.

 

이 마을에도 웃음의 코드가 다른 인종들이 살고 있다. 요인은 아마도 ‘욕망의 성분이 다르기 때문’이며 ‘유전자가 기억하고 있는 욕망의 습속 때문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이기고 지배하고 욕망을 해소하는 데에 길들어 있는 유전자가 있는가하면, 삶의 의미를 긍정하는 대신 자신에게 혹독함을 가진 유전자가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 나는 어떤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까하는 생각에 독서 중에도 문득 등이 뜨거워졌다.

작품 속에서 어떤 사랑이 좋은 사랑인지를 묻는 대목이 나오는데, ‘나’라고 하는 경험에 의한 자기 정체성에 구속되어 있으면 좋은 사랑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사랑을 하려거든 먼저 그 아성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그게 사랑의 전제조건인 셈이라고, 그렇지 않으면 집착일 뿐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러면 우선 실래와 영만처럼 자기를 ‘사랑해 주어서 고맙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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