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범죄의 철학적 합법화: 사회진화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역사는 승자의 역사요, 강자의 역사이며 기득권의 역사이다. 그들의 역사 속에서 소외되고 배제되었던 타인(제3세계, 피지배층)들의 또 다른 역사를 찾아보기란 무척 힘들뿐만 아니라 그 평가 또한 왜곡되어있는 것이 현실이다. 약육강식에 의한 승자들만의 가치(지배 이데올로기 또는 헤게모니)에 과감히 물음표를 던지며 기존의 통념을 깨부수는 작업을 줄기차게 벌이고 있는 사람들 중의 하나가 바로 ‘박노자’이다. ‘나를 배반한 역사’라는 책뿐만 아니라 저자가 기존에 집필한 책들의 공통점은 보편적 가치라고 받아들여진 국가주의, 민족주의에 매몰되어 나타난 사회적 부조리를 고발하고, 무비판적으로 수용된 스펜서式 사회 진화론, 19세기 이후 동아시아에서 풍미해 온 양계초류의 영웅주의 사관을 극복했다는 것에 있다. 저자가 말하듯 한국사회에서 나타나는 제반 문제점들의 궁극적 원인은 ‘안’(조선)의 궁핍함에 절망한 나머지 ‘밖’(서구, 일본 제국주의)의 화려함에 경도되어 무비판적, 무차별적으로 ‘밖’을 수용했다는 것에 있다. 당시 지식인이라 불릴 수 있는 개화 1세대(김옥균, 박영효, 유대치 등)부터 이미 제국주의 논리를 깊이 내면화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의 최대 손실이나 수난이었다는 것이다. 즉, 조선이 식민통치에 들어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적자생존이라는 거역할 수 없는 우주적 법칙에 의한 불가피한 결과였다는 의식이 팽배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제국주의에 대한 일종의 지적 항복현상까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회진화론에 바탕 한 제국주의 논리가 19세기 말 과도기의 이념 공백을 채움으로써 주체성을 결여한 일종의 문명 숭배주의가 수많은 지식인, 운동가들에게 확산되고 집단적인 보편적 이념으로 공고화 돼버렸다. 미국의 베트남, 아프칸, 이라크 침공도 이러한 약육강식, 적자생존 논리에 의존하여 하등의 비판의식 없이 바라보는 것도 결국은 역사적으로 사회 내부로부터 뿌리깊이 자리 잡은 사회진화론이라는 허상(虚像)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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