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님의 작품입니다.

제가 좋아라하는 작가님이라 이미 브랜드네임이 확실한 작품일 거 같습니다. 이미 국내외로 하루키신드롬으로 유명하고 썼다하면 베스트셀러가 되지만 그러한 베스트셀러보다도 하루키님과의 상성이 어느 나이를 지나면서 부터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고 그의 작품을 무척이나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글에서 묻어나오는 그의 소탈하면서도 쉽고 무던한 문체에서 묻어나오는 그의 필체를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특히 소설이나 에세이에서는 더욱더 그의 성품이 잘 묻어나오는 거 같아 좋아합니다. 

하루키님께서 워낙 여러방면을 글을 쓰시는 분이라 그의 글을 접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거 같이 느껴집니다. 어떻게 이런 글들을 끊임없이 뽑아내는 지 신기할 따름이지만 작가로서의 그의 노괴가 충분히 많을 것이라고 저는 짐작만 해봅니다.

 

이번 장편소설은 제목부터가 뭔가 심상치 않습니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 어떤 사람이지? 사람이 맞겠지? 다자키 쓰쿠루는 그렇다치고 그는 또 누구일까? 어디로 떠난 순례를 말하는 걸까? 그들이 순례를 떠난 해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건가? 하는 제목만을 가지고도 수 많은 물음표를 만들어 냅니다.

 

무미건조한 인생에 더한 것도 그렇다고 덜한 것도 없는 무덤덤한 36살의 다자키 쓰쿠루라는 남자가 나옵니다. 고등학생 시절 소올메이트처럼 느껴졌던 4명의 친구들로 부터 어느 날 절교를 당합니다. 삶의 절망을 느끼고 거기에서 극복하며 나이를 먹은 쓰쿠루는 소개로 만나 진지한 만남을 원하는 2살 연상의 사라와 대화를 하다 그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하루키님의 필체로 충분히 매끄러우면서도 흥미진진하게 풀어가는 내용들 덕분에 책이 술술 읽힙니다.

또한 고등학교 때 완벽한 다섯손가락처럼 하나였던 그들이 왜 쓰쿠루를 밀어냈는지 그리고 사라는 왜 그런 식으로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책을 끝까지 긴장감있게 만듭니다.

 

질투란, 쓰쿠루가 꿈속에서 이해한 바로는, 세상에서 가

장 절망적인 감옥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죄인이 스스로를

가둔 감옥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힘으로 제압하여 집어

넣은 것이 아니다. 스스로 거기에 들어가 안에서 자물쇠

를 채우고 열쇠를 철창 바깥으로 던져 버린 것이다. 게다가

그가 그곳에 유폐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물론 나가려고 자기가 결심만 한다면 거기서

나올 수 있다. 감옥은 그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에. 그러나

그런 결심이 서지 않는다. 그의 마음은 돌벽처럼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그것이야말로 질투의 본질ㄹ인 것이다.

(p.60~61)

 

감정에 둔한 쓰쿠루가 아이의 더딘 옹알이처럼 감정을 배워가는 처럼 느껴지는 부분이었습니다.

꿈속에서 이름 모를 여인에게 느꼈던 감정을 통해 그게 질투이고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36년을 살아온 인간이 태어나서 한 번도 그런 질투를 느껴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신기하고 그럼으로써 이 쓰쿠루란 남자가 얼마나 감정에 무딘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질투를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인 감옥이라 표현하며 왜 그런지에 대해서 너무 이해하기 쉽게 묘사해 둔 부분이 참 하루키님 다웠습니다.   

 

"무슨 일이건 반드시 틀이란 게 있어요. 사고 역시 마찬

가지죠. 틀이란 걸 일일이 두려워해서도 안 되지만, 틀을

깨부수는 것을 두려워해서도 안 돼요. 사람이 자유롭기 위

해서는 그게 무엇보다 중요해요. 틀에 대한 경의와 증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늘 이중적이죠. 내가 할 수 있는 말

은 이 정도예요."

(p.85)

 

연하의 친구 하이다와 쓰쿠루의 대화도 참 재미있습니다.

 

"따져 보면 참 기묘한 이야기야. 그렇게 생각 안 해? 우

리는 기본적으로 서로에게 무관심한 시대를 살면서도 이

렇게 다른 사람에 대한 대량의 정보에 둘러싸여 있어. 마

음만 먹으면 그런 정보를 간단히 살펴 볼 수 있는 거야. 그

러면서도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 사실은 거의 아무것도

몰라."

(p167~168)

 

흥신소의 직원처럼 쓰쿠루의 네명의 친구들과 아무런 접점이 없는 사라가 그들의 이름만을 가지고 (물론 쓰쿠루와의 대화를 통해 사는 곳과 졸업한 고등학교 정도는 알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페이스북, 구글, 트위터와 같은 검색 방법을 동원해 찾아내는 과정에서 무서움을 느꼈습니다.

제가 사용하고 있는 페이스북과 구글, sns들과 심지어 지금 글을 작성하고 있는 여러가지 인터넷 망들을 통해 저와는 생면부지한 사람이 저를 찾아내고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네요.

하지만 예전에 싸이월드나 페이스북으로 오래전 알고 지냈던 사람들이라던지 동창생들이 연락왔을 때에는 반가움도 있었지만 조금은 어색함과 난처함도 동반한 적이 있어서 어느 것이 좋다 나쁘다 말하기가 힘든 거 같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부정적이지만요.

 

"회사 생활을 통해 배운 또 한 가지는 이 세상 대부분의

인간은 남에게 명령을 받고 그걸 따르는 일에 특별히 저항

감을 갖지 않는다는 거야. 오히려 명령을 받는 데 기쁨마저

느끼지. 물론 불평불만이야 하지만 그건 진심이 아냐. 그냥

습관적으로 투덜대는 것뿐이야. 자신의 머리로 뭔가를 생

각하라, 책을 가지고 판단하라고 하면 그냥 혼란에 빠지

는 거야. 그러면 바로 그 부분을 비즈니스 포인트로 삼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던 거지. 간단한 일이야. 알겠어?"

(p.222)

 

아카가 본인이 그 회사를 세우게 된 이유를 설명하면서 말 한 부분 중 이 구절은 특히 마음에 와 닿습니다.

회사 생활 뿐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이나 학교 생활, 가족들과의 사이에서도 과연 내가 능동적인 인간인지 아니면 다른사람들의 지시나 의견, 혹은 요구에 의해서만 움직여지고 있는 수동적인 인간이 아닌지 생각해 보게 했습니다.  

 

쓰쿠루는 사라의 조언과 정보를 가지고 사라와의 관계 뿐 아니라 자신의 문제점을 찾기 위해 이제는 잊어버렸다 생각했던 친구들을 찾아갑니다. 왠지 이 부분에서는 우리나라 영화 <써니>를 연상케 했습니다. 저만 그런가요? 분명 출발은 똑같았는데 같은 학교에 다니고 같이 웃고 떠들고 행복했던 시절, 무수한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난 그들은 얼마나 변해 있는지 저 또한 더 나이가 들고 옛 친구들을 만나면 어떤 감정인지 알 수 있겠죠.

친구들을 만나면서 쓰쿠루는 자신이 몰랐던 사실과 감춰졌던, 자신이 알고자 했던 이유들을 알게 됩니다. 상처를 묻는다고 해결되지 않는 거 같습니다. 다시 헤집어서 꺼내들고 근본적인 상처를 치유하지 않는 한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가슴 속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 거 같습니다 .

 

오랜만에 너무나 재미있는 하루키님의 소설을 접할 수 있어 너무 행복했습니다.^^
 

위 서평은 한우리 서평단의 지원을 받은 도서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