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 책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그림 예시를 통한 실질적인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책을 생각하기 쉽다. 나도 그런 예상을 하고 이 책을 받아보게 되었는데, 그동안 내가 드로잉 관련 서적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을 완전히 깨버린 책이 바로 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이 책을 펼쳐보면 마치 소설책과도 같이 깨알같은 글들이 가득 쓰여 있는데, 이 내용들이 모두 뭔가 하니, 그림을 그리는 방법에 대해서 세세하게 써 놓은 책들이다. 원래 학자이면서 화가라서 그런지, 글을 쓰고 사물을 묘사하는 실력도 일품이다. 그러나 가독성은 조금 떨어지는 감이 있어서 정신차리고 읽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부분들이 많다. 평소에 독서를 즐겨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솔직히 이 책을 읽기도 만만치 않겠다.

 

존 러스킨이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하는 점은 한결같다. 일단 사물을 굉장히 꼼꼼하게 관찰하고 그대로 옮겨 그리는 연습을 충실하게 해야하며, 아주 기본적인 점부터 꾸준히 연습을 해야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한다. 요즘 같으면 추상화나 자신의 나름대로 개성을 살려서 그리는 일도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지만, 이 시대에는 사진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물의 특징을 잘 잡아내어 그대로 그리는 것을 가장 그림을 잘 그린다고 여겼나보다. 그리고 또 특징적인 것이, 인물화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고, 풍경화나 정물화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논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중요하게 여긴 것이 아닐까 싶다. 물감과 유화, 연필에 걸쳐서 다양한 기법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는데, 일단 연필로 세밀하게 그리는 연습을 해야 다른 종류의 그림들도 잘 그릴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두 컷은 따라 해볼까 싶기도 했는데, 워낙 상상력이 많이 필요한 작업이라, 사실 포기했다. 그 시대에는 어떤 식으로 그림을 배웠는지 엿볼 수 있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존 러스킨이 평소에 그림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기도 한다. 나도 처음에는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나중에는 꼼꼼하게 관찰하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꼭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이런 습관을 통해 주변의 아름다움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된다. 그림실력보다는 그 시대의 사회상이나 자연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살펴보고자 한다면 좋은 참고 서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