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볼프라는 이름은 독일어로 늑대를 뜻한다. 냉전이라는 황량한 시대에 그는
   고독한 늑대였다.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야 했고, 잡히지 않기 위해 꾀를
   부리고 달려야 했다. 게르만의 철저함과 유대인의 천재성, 그리고 러시아의
   인내심을 두루 합친 그의 인생은 그 자체로 대서사시였다. "

  책 표지 바로 뒤에 나오는 글귀이다. 아마도 가장 이 책을 잘 표현하고 있는
글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적어본다. 우리에게는 빛바랜 사진처럼 여겨지는
독일 통일 전의 서독과 동독, 서방의 치열한 스파이활동을 다룬 책이라 흥미를
가지고 보기에 충분하다. 지금은 하나의 독일이 되었지만, 보여지는 것과
다르게 내부도 하나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도 어찌보면 현재의
독일이 되기전과 비슷한 입장이라 많은 생각에 잠기게 만든 책이다. 통일 후
한국은 어떨까? 이 책을 통해 좀 더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본다.

  2006년 11월9일 오후 보도국에 있는 저자의 책상으로 날아든 AP통신의 비보
" 오랜시간 동안 동독의 정보기관 책임자로 재직하면서 서방을 제압했던
'얼굴 없는 사나이' 가 사망했다." 그가 바로 마르쿠스 볼프이다. 볼프의 뜻은
영어의 울프와 같이 늑대이다. 평생 비밀이라는 운명과 손을 잡고, 때로는
가시에 찔리고, 독을 들이켜 고통스러워하기도 했지만, 남모를 황홀함에 취하
기도 했던 신비함의 아우라를 지녔던 인물이다.

  세상을 발칵 뒤집히게 만든 각종 스파이 사건의 배후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그는 적진에 첩자를 심는데 천재였다. 이를 플랜트(PLANT)라고 하는데 서독에
심어놓은 동독 스파이 수가 무려 400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사람에게 정보지능
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는 최정상에 속할 것이다.

  흔히 인간을 활용한 정보수집을 휴민트(HUMINT)라 부르는데, 그는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하였다. 적진 깊숙이 투입한 일명 '로미오 작전'에서
보여주듯 패러다임 시프트(발상의 전환)에 능숙한 정보기관장이었다. 신비스러움의
주역답게도, 스웨덴에서 사진이 찍히기 전까지 30여년간 그의 정체는 물론이고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삶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 다루지 않았던
냉전의 핵심인 분단 시대와 정보기관을 정면에서 다루었다. 탑 시크릿은
정말 아무도 알아서는 안되는 대외비인데, 이 책을 통해 역사의 탑 시크릿을
알수 있게 되니 마치 스파이 중요한 첩보를 입수한 느낌이다.

  시크릿이라는 단어는 스파이라는 말속에 이미 내포되어 있다. 비밀속에
자신이 아닌 타인의 삶을 그림자처럼 살아가는 스파이의 세계를 좀 더 구체적
으로 들여다 볼 수 있게 되니, 그 스파이 활동의 긴장감이 전해지는 느낌이다.
나는 편안하게 책을 읽고 있지만, 이 책속의 수많은 스파이들의 삶은 얼마나
많은 고뇌속에 살았을까? 007 영화속의 제임스 본드는 어쩌면 스파이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 것 같다. 하지만 만약 항상 그렇게 타인의 삶을 산다면 진정
행복할까? 지금도 국가간의 첩보전은 치열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데올로기
시대의 성격보다는 자본주의 시대의 성격에 맞는 첩보전이 치열하게 보이지
않게 전개될 거라 예상해 본다.

  보이지 않게 세계를 움직이는 세력들은 언제나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마르
쿠스 볼프 또한 그들의 희생량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스파이 세계의
인간적 고뇌가 묻어나는 책이라 생각한다. 속고 속이며, 사랑과 배신이 난무
하는 세계속에서 살아갔을 그들의 인생을 보고 있노라니 왠지 나는 행복한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상대적인 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