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불호가 많이 갈린다는 얘기에 걱정했지만 내게는 꽤 괜찮은 소설이었다. 처음엔 상황마다 너무 자세하게 쓰여있는이 달갑지 않았지만 뒤로 더 넘어갈수록 그 부분은 장점이 되어갔다. 마치 실제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인 듯한 느낌이 들면서 점점 몰입되어갔다. 검사인 아빠를 둔 14살 남자아이가 친구를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기소되었고, 진실공방이 오고가는 와중에 벌어지는 아이와 부모간의 관계와 그 가정을 바라보는 이웃과 사회의 시선, 점점 피폐해져가는 한 가정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졌다. 덕분에 무죄이면서도 유죄가 되어 한순간에 온갖 비난을 받으며 고통을 받아야 했고, 무죄 판결이 나서도 원래의 평범했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해 힘들어하는 사람들에 대해 떠올려보게 되었다. 사실 그 동안 뉴스를 통해 실제로 이런 일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땐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고 막연하게 그저 '힘들었겠구나'라는 생각만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감내해야했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그 사람들은 재판 과정에서 온갖 일들이 파헤쳐진 상태로 용의자로 지명되었다는 것만으로 무죄를 선고 받고도 이미 변해버린 삶과 변해버린 이웃들 사이에서 살아가야했던 것이다. 범인이라 생각하면 무조건 물고 늘어지고 파헤치는 사람들로 인해 판결 이전에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진실이 가려지기 전까지 추측만으로 이뤄지는 마녀사냥은 자제되어야 하지만 너무 자주 발생하는 일이다. 또, 반대로 어느날 갑자기 가족을 잃어버린 가족 역시도 죽을때까지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가져야 한다. 사람들의 시선에서도 그리 자유롭지 못하다. 책에선 이러한 문제점들을 꼬집어내며 '그게 과연 나라면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떤 행동을 할지' 독자들에게 묻는다.

 

 

지방검찰청의 검사인 앤디는 14살의 벤 리프킨이 살해된 사건을 조사하다가 그 아이가 아들 제이컵과 같은 학교 같은 반 학우였다는 걸 알게된다. 주변 탐문과 시신의 주변 수색을 통해 증거와 증인을 찾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결국 벤의 같은 반 아이들을 모두 면담하게 되고, 아이들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한 아이에게서 정보를 입수한다. 제이컵이 칼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그것을 제이컵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데릭이 얘기를 꺼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제이컵의 방 서랍장에서 칼이 발견되었다. 앤디는 제이컵에게 혐의가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나, 혹시라도 나중에 그 칼이 논란의 여지를 줄 것이라 판단해 칼을 없애버린다. 그리고.. 드디어 인근에 사는 게이인 소아성애자 레너드 패츠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수사에 들어가지만, 성과는 없었다. 그렇게 아무런 증거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시간이 흘러가고, 벤의 옷에서 발견된 지문이 제이컵의 것으로 밝혀진다. 놀란 앤디와 그의 아내 로리. 보석금을 내고 제이컵을 집으로 데려온 뒤 사건해결을 위해 힘을 쏟는다.

 

주변 이웃들의 시선은 냉담해지고 모든 교류가 끊어진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앤디는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자신에게 이어진 폭력적인 DAN가 영향을 준 것은 아닌지.. 걱정하게 된다. 사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어릴때 어린 여자아이를 살해한 혐의로 지금껏 교도소에서 형을 살고 있고, 그의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 역시 폭력적인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 사실들을 지금껏 숨겨왔지만, 분명 자신의 과거 역시 파헤쳐질 것을 알고 미리 로리에게 이야기를 꺼내게 된 것이다. 이 놀라운 이야기에 할 말을 잃은 로리. 자신들의 변호사에게도 이야기를 미리 한뒤, 검사측에서 걸고 넘어질 것을 대비해 정신과 의사의 진단서도 미리 받아둔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제이컵에게 불리해져만 가지만 희망을 잃지 않은 앤디와 로리. 하지만 로리는 고립된 상황에서 제일 많은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부부간에 대화도 점점 줄어들고, 각자의 생각에 빠져있을 때는 경우가 많아졌다.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던 어느날, 결국 교도소에 있는 아버지의 DNA까지 받아와야하는 상황이 오고 50여년이 다 되도록 연락도, 만나지도 않았던 아버지를 만나러 교도소로 향하게 되는 앤디. 그에게 그의 손자 제이컵이 위험에 빠진 사실을 알리고, DNA를 받아낸다.

 

여전히 패츠가 범인이라 믿는 앤디. 그의 뒤를 쫓기도 하고, 감시하기도 하며 패츠가 범인임을 증명해보려 하지만 어렵기만 하다. 재판은 여전히 진행중이고 좀더 불리해진 제이컵의 입지! 그런데.. 이 결정적인 순간에 패츠가 자신의 범행 일체를 고백하는 편지를 남긴뒤 자살한 상태로 발견된다. 제이첩에게 자유가 주어지고 가족들은 환호한다. 하지만 그도 잠시.. 절대 예전과 같을 수 없는 그들의 일상. 참다참다 휴가를 떠나 기분전화을 하기로 한다. 자메이카의 웨이브즈로 2주간의 여행을 떠난 앤디 가족! 그런데.. 그곳에서도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또 한번 이 가족의 일상을 뒤흔든다.

 

 

내 머릿속에서 작은 속삭임이 들렸다. '증거를 인멸해! 공무집행을 방해해!' 내 말이 끔찍하게 들리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순진한거다. 당신은 판사나 배심원이 책임감 있는 사람들이고 오심은 드믄 일이기 때문에 나 역시 사법제도를 신뢰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제이컵의 무고함을 진실로 믿는다면 경찰이 밀고 들어와서 원하는 것을 뭐든 가져가도록 내버려둬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추악한 작은 비밀이 있다. 형사소송 평결에서 발생하는 오류는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유죄인 범죄자가 처벌을 모면하는 '잘못된 부정의 오류'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여하튼, 우리는 그러한 오류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피고인을 위해 부정한 수단이 흔하게 사용되므로, 그러한 오류는 예측이 가능하다. 진짜로 놀라운 일은 무고한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는 '잘못된 긍정의 오류'가 너무나 자주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오류를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한 오류를 인정하는 순간, 너무 많은 일에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증거라고 부르는 것은 증거를 제공하는 목격자만큼이나, 혹은 모든 인간들만큼이나 신뢰할 수가 없다. 기억력은 별 도움이 안 되고, 목격자의 범인 식별은 믿을 수 없기로 악명이 높고, 선의를 가진 경찰관조차도 판단이나 기억의 오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떤 제도에서든 인적 요소는 실수를 범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왜 판사나 배심원은 다르리라 생각하는가? 그들도 다르지 않다. 사법제도에 대한 우리의 눈먼 신념은 무지의 산물이자 마술적 사고이다. 나는 결코 내 아들의 운명을 사법제도에 맡길 수는 없었다. 이는 제이컵의 유죄를 믿기 때문이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제이컵의 무죄를 믿기 때문이었다.  - P 138-139

 

우리는 비싼 가격 때문에 그곳에서 장을 보지 않았다. 제이컵의 소송으로 이제 우리는 파산 위기에 처했고, 그곳에서 장을 본다는 생각은 더더욱 터무니없게 느껴졌다. 우리는 그곳에서 장을 볼 자격이 없었다. 우리는 이미 재정적으로 파산 상태였다. 우리는 처음부터 부자가 아니었다. 그나마 우리가 이 동네에 거주할 수 있었던 까닭은 아직 집값이 쌀 때 산더미 같은 빚을 내서 집을 구매했기 때문이었다. 조너선의 수임료도 이미 여섯 자리에 이르렀다. 우리는 제이컵의 대학 학자금 전부를 소송비용으로 썼고, 노후 자금을 야금야금 축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소송이 끝나기도 전에 파산할 것이고, 남은 소송비용을 지불하려면 집을 담보로 돈을 대출받아야 할 것이다. 또한, 검사로서 내 경력도 끝장났다. 비록 무죄 판결이 내려진다고 해도 나는 비난의 멍에를 벗어던지고서 다시 법정으로 걸어 들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몸소 경험하기 전까지는 범죄 사건의 이러한 일면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었다. 피고 측이 되면 감당하지 못할 만큼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죄의 유무를 떠나서 기소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형벌이 된다. 피고인은 모두 대가를 치른다. - P 306-307

 

소송에 따른 비용으로 경제난에 허덕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온갖 가십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면.. 어느 누가 쉽게 견뎌낼 수 있을까? 경제난으로 중도에 소송을 포기해 죄를 뒤집어 써야하는 경우라면 대체 누구에게 보상을 받아야 할까.. 나는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까..? 로리와 같은 결정을 내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건 정말 최악의 결정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내 아이가 10대에 이미 범좌자라면.. 휴..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누가 되었든 범죄를 저지르기 전.. 정말 우발적이든 뭐든간에 자신이 저지른 일이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어떤 상처를 주게 될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물론 사이코패스 같은 범죄자들은 이런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하겠지만.. 자꾸 강력범죄 연령이 낮아지고 더 다양해지고 있다는 게 걱정이다. 자신의 아이와 이웃의 아이에게 좀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돌보며 아이들이 올바른 생각과 행동으로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어른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으면 좋겠다.

문학·책, 제이컵을위하여, 소년범죄, 사이코패스, 윌리엄랜데이, 검은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