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내내 답답해서 가슴이 탁 막히는 기분이었다. 어찌되었든 결말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여전히 기분은 가라앉는 상태 그대로였다. 너무나 엄마를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딸을 외면하고만 여자의 이기적이고 잔인한 마음과 그런 엄마에게 사랑받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딸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면 누구나 나와 같은 상태가 되지 싶다. 엄마를 위해, 엄마 때문에, 엄마가 있으니까, 엄마 덕분에.. 뭐든지 엄마가 없으면 안되는 여자의 심리상태나 행동들은 지독한 마마걸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결혼 상대자마저 엄마가 마음에 들어했기에 결정하고, 아이를 낳는 것 조차 엄마가 기뻐했기에 기뻐하는 모습에선.. 한숨이 절로 나왔다. 딸을 그렇게 만든 여자의 엄마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나는 취미활동을 하던 카페에서 만난 다도코로와 엄마의 지원 속에 결혼을 한다. 칭찬받는 것에 익숙하고 사랑받는 것에 익숙한 나는 칭찬에 인색한 다도코로가 사람들의 모습에 당황하지만 이내 엄마의 칭찬에 마음을 쓰지 않는다. 결혼하고 반년쯤 후, 임신을 하고 딸을 낳는다. 그때쯤 유난히 야근이 잦은 다도코로 때문에 혼자 있는 것이 무서워 매번 엄마를 집으로 초대했고, 엄마와 함께 딸을 돌보며 그렇게 하루하루 나름의 행복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영향을 받아서일까? 그녀의 딸 사야카 역시 어른들의 눈치와 상대방이 기분을 먼저 헤아릴 줄 아는 아이로 자랐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갑작스러운 산사태로 인해 엄마와 사야카 둘 중 한명만 구해야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엄마는 자신을 구하려는 나에게 딸을 구하는게 맞다며 그녀를 떠밀지만 나는 엄마를 먼저 구하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러다.... 엄마는 딸이 먼저라고, 나를 낳아서 진심으로 행복했다고.. 그 사랑을 딸에게 쏟아부어 금지옥엽으로 소중하게 길러달라고 당부하고 세상을 떠난다. 그렇게 집을 잃고 시댁으로 들어가야 했던 세 사람. 그날부터 나의 고생이 시작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저는 딸을 어루만지기는 커녕 몸이 닿는 것조차 피했습니다. 절대로 딸을 향한 애정이 식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아이의 손은 원래 그런 것인지, 딸의 손이 특별히 그랬는지, 그 아이의 손은 한겨울에도 따끈따끈 하고 포근했습니다. 다만, 그 아이의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엄마를 떠올리게 해서, 두 번 다시 엄마가 상냥하게 머리를 쓰다듬어줄 일은 없다는 생각에 슬픔의 구렁텅이에 빠져들곤 했습니다. 나에게는 엄마가 없는데, 이 아이에게는 있다. 어머니, 하고 부르면 대답해주는 사람이 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사람이 있다. 어째서 이 이아에게는 있고, 나에게는 없을까. 나쁜 일에 손 댄 적도 없는데. 어째서 이 아이는 엄마를 잃은 내 기분 같은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응석을 부릴까. 아무 죄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딸이 잡은 손을 뿌리친 적도 있습니다. - P 97

 

"아이를 낳은 여자가 전부 어머니가 되는 건 아니에요. 모성이란 게, 여자라면 누구나 갖고 태어나는 성질도 아니고, 모성이 없어도 아이는 낳을 수 있으니까요. 아이가 태어나고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모성애가 싹트는 사람도 있을 게 분명하고요. 거꾸로 모성이 있으면서도 누군가의 딸이고 싶고, 보호를 받는 입장이고 싶은 마음이 강하면 무의식중에 자기 안의 모성을 배제하는 여성도 있어요."

"아하, 네가 말하는 엄마와 딸이란, 모성을 지닌 여자와 그렇지 않은 여자란 말이네. 그래서 미묘한 코멘트를 남긴 어머니 밑에서 자살을 시도한 딸에게 <만에 하나 운 나쁘게 모성이 없는 여자의 딸로 태어났어도 비관하지 말고 힘내라>, 뭐 그런 말이라도 해주려는 거야?"

"....그렇게 간단한 해답이 있었네요." -P 229

 

모진 시집살이에 힘겨워하면서도 자신이 조금만 더 노력하면 사랑받을 수 있을거라며 스스로를 다독여가며 살림을 꾸려나간다. 시댁 식구들 때문에 둘째 아이를 잃고서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신경쓰던 나. 하지만 정작 옆에 있는 남편 다도코로와 딸 사야카의 마음은 크게 헤아리지 못했다. 결국 다도코로는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가고, 아버지의 외도 사실과 할머니의 죽음에 얽힌 진실은 사야카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다.

 

세상에는 다양한 관계의 모녀 사이가 있지만, 이 책 속의 모녀 사이는.. 사이가 좋았다고 하기도 그렇고 사이가 나빳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좀 어중간하고 약간은 거리가 있는.. 조금은 불편한 관계로 보여졌다. 아니.. 그냥 좀 답답한 관계 같기도 하고.. 이 모든 사건의 중심인 '나'가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엄마의 사랑을 갈구했는지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분명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것으로 보여지는데 말이다. 결말에 이르러선 '그냥 이대로도 나쁘지 않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그 무언가는 쉬이 없어지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엄마와 딸' 중 단 한사람만을 구해야하는 상황에서 난 과연 어떤 행동을 할까? 누구를 구할까?..라는 질문과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나'가 짊어지고 있는 마음의 죄책감은 분명 똑같이 겪을거라는 것을, 어쩌면 그 죄책감에 딸에게 아픔을 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 상처를 줄지는 알 수 없고 내게 모성이 있을지 없을지도 불분명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처럼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기 위해 내 딸을, 내 자식을 외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장담한다. 쉽게 장담하는건 아니라고 했지만, 이건 분명히 장담할 수 있다.

 

모성, 문학·책, 미나토가나에, 고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