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장 한문장 왜 그렇게 뜨끔뜨끔 하던지.. 대충 읽어댄 책들이 수십권, 읽다만 책도 수십권, 거기에 편독까지.. 나쁜 독서 습관은 모조리 다 가지고 있는 내게 일침을 가하는 것 같았다. 매년 "편독하는 습관을 버려야지.. 올해는 내가 평소 읽지 않았던 분야의 책들을 좀더 읽어봐야지.." 하고 다짐을 해도 손이 가는 책은 역시나 내가 평소에 즐겨읽던 분야의 책이었다. 사실 이 책 역시 내가 평소에 궂이 찾아서 읽으려 했던 분야의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책을 읽게 되었고, 많은 것을 느끼고 반성하게 됐다. 물론.. 그렇다한들.. 매년 실패했던 나의 편독 습관이 쉽게 고쳐지지는 않겠지만, 편독에 대한 반성이 나를 조금 더 깊이있는 독서의 길로 한 걸음, 아니 반걸음이나마 뗄 수 있게 해준거라 믿고 싶다. 책에는 9분(허균, 이익, 양응수, 안정복,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홍석주, 홍길주) 선인의 글 속에서 독서에 관한 글을 추려낸 후 저자의 생각을 덧붙여 놓았다. 그래서 선인들의 글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저자의 글을 읽으면 이내 그 글이 와닿는 글이 되었다. 많은 글 속에서 독서를 정독과 다독, 의심과 의문을 가질 것을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P. 21 (허균편)

사는 게 바빠 책 읽을 여가가 없다고 투덜거리지 마라. 낮에 바쁘면 밤중에 읽고, 갠 날 바쁘면 흐린 날 읽고, ,여름에 바쁘면 겨울에 읽으면 된다. 농경 생활에서나 가능한 얘기지만, 막상 미루어 확장하면 다를 게 없다. 학생들은 학기 중에 바쁘면 방학 때 읽고, 시험 대 바쁘면 시험 끝난 뒤에 읽으면 된다. 직장인은 회사에서 바쁘면 출퇴근 시간에 전철에서 읽고, 쓸데없는 술자리를 줄여서 읽을 일이다 도대체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말은 그저 한 마리의 소시민, 무지렁이 밥벌레로 살겠다는 말과 같다.

 

P. 298 (이덕무편)

책을 읽다가 훌륭한 대목을 만나면 혼자만 알지 말고 함께 나누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남에게 알려 줄 대마다 나는 그 내용을 한 번 더 곱씹어 좋고, 상대도 그 뜻을 함께 새기게 되어 더 좋다. 공부는 함께 나누면서 커지고 깊어진다. 좋은 내용을 보면 혼자 알기 아까어 남에게 알려 주고, 멋진 책은 남도 나의 이 느낌을 가졌으면 싶어 소개해 준다. 우리는 날마다 나아가야 하고, 나아져야 한다. 내가 아는 이것을 내 친구가 모르면 어쩌나 싶어 안타까워 함께 하는 마음 속에 공부가 쑥쑥 커 간다. 지혜가 쭉쭉 자란다.

 

주변에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참 핑계가 다양하다. 그 중에서 특히나 제일가는 핑계는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 문장에 참 많은 공감을 했다. 책을 추천해 달라해서 추천을 해준 뒤 한참 뒤에 물어보면 아직 못 읽었다는 얘기를 듣곤 했다. 좋은 책을 추천해줘서 고맙다는 말은 생각보다 많이 들어보지 못했고, 왜 아직도 못 읽었냐는 물음엔 항상 시간이 없었다는 말이 붙었다. 나야 평소에 책을 즐겨읽기 때문에 나는 가능한거라는 말을 듣은 것도 여러차례.. 왜 나만 가능하다고 얘기를 할까? 나랑 다른 시간을 갖고 있는걸까? 아닐 것이다. 다만 나는 자투리 시간을 많이 활용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그 시간에 다른 할 일들을 하기 때문인거다. 좀더 책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책을 통한 다양한 간접 경험이 나 자신을 좀더 풍요롭게 해주는 그 기쁨을 모두 알았으면 좋겠다.

 

P. 41 (이익편)

학사 한 사람이 책을 보다가 반도 못 보고는 땅에 던지며 말했다. "책만 덮으면 바로 잊어버리는데, 본들 무슨 소용인가?" 현곡 조위한이 말했다. "사람이 밥을 먹어도 뱃속에 계속 머물려 둘 수는 없다네. 하지만 정채로운 기운은 또한 능히 신체를 윤택하게 하지 않는가. 책을 읽어 비록 잊는다 해도 절로 진보하는 보람이 있을 것일세." 말을 잘 했다고 할 만하다.

나도 돌아서면 잃어버리는 일이 태반.. 그래서 가끔 좋은 문장을 찾아 기억을 더듬어 책을 다시 살핀다. 잊어버린다해도 잊는게 아니다. 그때 느꼈던 그 생각과 감정과 배움은 어디 가지 않는다. 분명 내 안 어딘가에 남아서 나를 성장시키고 있을 것이다.

 

P. 52 (이익편)

시비와 선악의 갈림에서 치란과 흥망의 역사가 나온다. 시시비비는 언뜻 분명해 보여도 두부 모 가르듯 갈라지는 것이 아니다. 다 옳은 것도 없고 전부 그른 것도 없다. 시비와 선악은 서로 맞물려 있다.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은 쉬 드러나지 않는다. 그때는 모두 옳다고 생각했던 일이 조금 지나서 보면 어처구니 없을 때가 있다. 당시에 그렇게 분개하고 흥분했던 일도 돌이켜 보면 왜 그랬나 싶어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역사 속에서 악인으로 낙인 찍은 사람도 당대에는 꽤 괜찮은 사람이었고, 선인으로 추앙하는 사람이 반대로 무능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겠다. 판단의 착오로 선악과 시비가 뒤바뀐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사건의 행간을 가늠하고 판단의 미묘한 저울질이 곁들여질 때 시비선악의 길이 비로소 훤해진다. 덩달아 흥분하고 얼덜결에 따라 읽어서는 역사책의 깊은 맛을 느낄 수가 없다.

 

아.. 정말 왠지 뒷통수를 한대 맞은 기분이었다.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이야기라 멍했다. 난 왜 이런 생각을 해보지 못했을까? 생각해보면 옛 선조의 이야기가 재조명 받고, 원래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르게 평가되는 일도 있는데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당시를 살아보지 못한 후세들이 단지 교훈을 얻고자 이야기를 약간 변형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책을 읽을때 의문을 가져야한다는 말은 결국 다른 시각으로 볼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보다. 책을 읽을때 의문을 갖자!!!

 

P. 116 (양응수편)

큰 문제는 스스로 똑똑하다고 여기는 사람에게서 생긴다. 모르는 것이 없다는 말은 제대로 아는 게 없다는 말과 같다. 몰라도 좋을 쓸데없는 지식까지 다 담아 두려 들면, 공부는 과부하가 걸려 소화불량 상태가 된다. 급히 해야 할 공부와 깊이 해야 할 공부를 놓아두고, 한없는 정보의 바다에서 표류하면, 돌아올 지점을 놓치고 만다. 열심히 할수록 목표에서 딱 그만큼 더 멀어진다. 맛난 음식도 함부로 먹고 제멋대로 먹으면 배탈의 원인이 될 뿐이다. 공부도 소화할 수 있는 만큼 해야지, 욕심만 부리면 안된다.

 

욕심은 어떤 일에서든 지나치면 안된다. 모든 것을 소화해낼 수 없는 법.. 차근차근 내가 할 수 있는 양만큼 꾸준히 소화해내는 게 중요하다. 

 

P. 143 (안정복편)

책 보는 일은 삼가지 않을 수가 없다. 음란한 소설을 보면 저도 몰래 방탕한 마음이 생겨난다. 산수의 해맑은 이야기를 읽으면 어느새 안개와 노을을 향한 생각이 깃든다. 병법과 진법에 관한 여러 글을 보노라면 모르는 사이 용맹한 기운이 솟아난다. 성현의 경전을 읽으면 뜻과 기운이 화평하게 되어 어느새 광명정대한 마음이 생긴다. 그런 까닭에 옛사람은 매번 잡서를 가지고 경계로 삼았다.

 

P. 383 (홍길주편)

독서에서는 읽어야 할 책과 안 읽어도 되는 책을 분간하는 것이 중요하다. 책이라면 무작정 다 읽겠다는 태도도 곤란하고, 꼭 읽어야 할 경전만 보고 나머지는 절대로 읽지 않겠다는 자세도 문제가 있다. 반드시 읽어야 할 기본이 되는 책은 찬찬히 읽되, 나머지는 그때그때 흥미나 관심에 따라 골라서 읽으면 된다. 쓸데없는 책을 작심하고 달려들어 읽어야 득 될 게 없고, 꼭 필요한 책을 건성건성 넘기면 안 읽느니만 못하다. 1년 내내 읽어 겨우 끝낼 수 있는 책이 있고, 하루에 열 권 씩 읽어치울 수 있는 책도 있다. 읽은 책의 권수가 중요하지 않다. 어떤 책을 어떻게 읽었느냐가 문제다.

 

잡서에서는 배울 점이 없는 걸까?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즐겨 읽는 많은 책들이 옛사람들의 눈에는 잡서에 속할 것이다. 아예 배운 것이 없다고도, 많은 것을 배웠다고도 말할 수는 없지만, 난 잡서가 경계로 삼기 위해 읽는 책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내게 독서의 즐거움을 주었고, 독서를 즐기게 해주었으며, 한 분야가 아닌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접할 기회를 만들어준게 잡서이기 때문이다. 로맨스 소설을 통해 연애의 요령을 배우기도 하고, 스릴러와 추리에서는 악을 처벌하는 법이나 사회적인 부분에 대해 생각해보고, 여행 에세이를 통해서는 미리 다른 나라를 알아볼 수 있는 기회과 간접 여행 경험을 얻었다. 물론 나처럼 편독을 하는 경우는 약하지만, 다양한 책을 통해서 얻는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독서가 즐겁다는 것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꼭 배움이 있는 책만 읽어야한다면 독서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드물 것이다.

 

P. 268 (이덕무편)

독서는 정신을 기쁘게 함이 가장 좋고, 그다음은 받아들여서 활용하는 것이다. 그다음은 해박해지는 것이다.

 

책에서 얻은 교훈과 배운 내용이 행동으로 옮겨진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도 없을 터.. 그건 정말 내 것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르다. 행함으로써 비로소 내것이 되는 것이다.

 

P. 386 (홍길주편)

영화도 처음 볼 때는 스토리 따라가기 바빠 세부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두 번째 보면 처음에 안 보이던 것들이 하나하나 보이기 시작한다 책 읽기도 이와 다를 것이 없다. 내용 따라가기 바빠 그저 읽고 지난 책들을 돌이켜 음미해 보면 새록새록 의미가 새롭다. 그때는 무심히 지나쳤던 대목이 사실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고, 마음을 쏟았던 대목은 사실은 별것 아닌 것일 때도 많다. 밑줄을 치고 메모를 하면 그 자취를 견줘 볼 수 있다. 안목이 트이고 식견이 열리면 자꾸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한 번씩 되돌아 살펴보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예전에 읽은 것이 사실은 안 읽은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정말 그렇다. 내가 좋다고 체크 해놓은 말을 다시 보면 쓸데없이 느껴지는 경우도 있고, 별로 좋지 않았던 문구가 더 와닿는 경우가 있다. 조금 더 나이먹고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책도 있고, 보고 또 보면서 문장들을 곱씹어 보면 좋을 책도 있다. 예전에 깨닫지 못했던 것을 나중에 다시 보고 깨닫는 경우도 있고.. 사실 지금 내 책장에도 대충 보고 다시 봐야지 하고 있는 책들, 너무 좋아서 다시 봐야지 하고 꽂아놓은 책들이 꽤 된다. 시간날때마다.. 한번씩 펼쳐봐야겠다. 언젠가 봐야지 하고 있다가는.. 계속 책꽂이에 꽂혀있는 모습만 볼 것 같은 느낌;; 좋은 문장들이 너무 많다. 그 중에서 몇개만 추려냈을 뿐.. 정말 느끼는 게 참 많았다. 이 책은 한 번 봐서 될게 아니라, 소장해두고 내내 봐야할 책으로 책장에 꽂아두어야겠다.

문학·책, 오직독서뿐, 정민, 김영사, 성인들의말씀, 독서습관, 독서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