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狂) 않으면 미치지(及) 못한다는 말이다. 즉, 이 세상에 대충해서 이룰 수 있는 일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행복한 고집쟁이들>(박종인 지음, 나무생각)에 나오는 열아홉 명의 고집쟁이들 역시 어느 한 가지 일에 미쳐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다.

  대인지뢰에 두 손을 잃었음에도 좌절하지 않고 천일염전을 일구며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는 소금장수 강경환씨, 산에 미쳐 남미 최고봉 아콩카구아에 올랐다 하산길에 발밑이 꺼져 700미터 추락했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산악인 손칠규씨, 어렸을 적부터 하늘과 땅이 맞닿은 저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하여 지유여행을 꿈꾸어 오다가 압록강을 넘기도 하고, 인민군에 자원하여 초소를 이탈해 세계일주를 하기 위해 휴전선을 넘어 귀순한 리영광씨.

  62년째 마술을 공연하고 있는 우리나라 1세대 마술사 알렉산더 리 이흥순씨, 의뢰받은 기업의 전기시설을 점검하다 2만 2,900볼트짜리 전기에 감전돼 두 팔과 발가락 두 개를 잃었지만 화가가 돼 ‘누드 크로키’분야의 봉우리에 우뚝 선 석창우씨, 유모 손에 이끌려 미끄럼틀에 올라갔다가 거꾸로 떨어져 척추가 부러져 140cm에서 성장이 멈췄으나 국악에 미쳐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전수자 키 작은 국악인 박공숙 씨.

  초등학교 때 오른팔을 잃었음에도 원래부터 팔이 하나였던 것처럼 학교와 집, 바다를 헤집고 다니며 그림을 그리다 한복 디자이너의 최고봉에 오른 이나경씨, 집안일과 아이들 수발 그리고 시어머니 병수발로 살아오다 잊고 있던 공부에 미쳐 쉰 넷에 문학에 등단한 시인 박미산씨.

  활이 없어지면 역사가 사라진다는 생각에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12대째 활을 만들고 있는, 300년 동안 활을 만들어 온 가문의 장인 권무석씨, 할아버지의 지혜와 아버지의 고집을 물려받아 95년째 맞춤양복을 만들고 있는 이경주씨, 세계 최대의 옻칠 작품이자 일본 도쿄의 문화재인 메구로가조엔을 복원함으로써 세계 최고의 칠예가가 된 전용복씨.

  ‘이 종이를 끝까지 지키라'는 아버지 말씀에 미쳐 100년 한지의 역사를 잇고 있는 한지 장인 장용훈씨, 작은 고깃배를 타고 친구들과 바다낚시에 나갔다 배가 뒤집혀 죽을 뻔하다 가까스로 살아나 서울에서 전복요리가로 성공한 채성태씨, “세상 사람들이 몽땅 목탁만 두드리면 시끄러워서 어찌 살겠냐”며 목탁 대신에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새 사진을 찍는 도연 스님.

  ‘지구촌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이라도 단 한 그릇 먹어보고 눈물을 흘려 줄 음식을 내 혼신의 힘을 다하여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수타 자장면 만드는 이문길씨, 좁은 가게에 앉아 전국의 흙냄새를 다 맡아보고, 신발 주인의 몸놀림까지 짐작하는, 자부심 가득한 축구화 수선의 장인 김철씨.

  “할 줄 아는 게 이것뿐이니 굶어죽지 않으려고 열심히 했고, 배운 게 없으니 혼자 깨달을 때까지 죽어라고 했다‘는 카메라 수선의 명장 김학원씨, 집안이 가난하여 중학교를 중퇴하고 올해로 49년째 나무배를 만들고 있는 전설적인 배무이 신영수씨, 나이 스물여섯에 시작해 53년째 현무암을 깎아 돌하르방을 만들고 제주의 삼라만상을 돌에 새기고 있는 석장 장공익씨.

  이들은 모두 한 가지 분야에 미쳐 인생을 살고 있다. 나고 자라온 환경은 전부 다르지만,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 유달리 강할 뿐 아니라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행복한 고집쟁이들이다. ‘고집’은 오늘의 이들을 있게 한 큰 원동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