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대군(세조)이 어린 조카인 단종을 왕위에서 내쫓고 조선의 제7대 임금으로 즉위할 수 있었던 것이, 알려진 것처럼 한명회, 권람, 정인지, 신숙주, 홍윤성 등 모반세력의 힘만으로 가능했던 것일까. 여기에는 그동안 나도 몰랐던 불교계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도대체 불교와 수양대군은 어떤 관계였을까. <모반의 연애편지>는 이런 궁금증을 풀어주는 역사소설이다.

  김다은 작가의 <모반의 연애편지>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편지 형태의 내용 전개가 눈길을 끈다.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일관성 있게 내용을 말하지도 않고, 하나의 편지가 끝나면 다른 사람이 다른 내용으로 말하는 형식이다. 어떤 편지는 직접 당사자에 관한 내용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편지는 다른 사람이나 어떤 사건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기도 한다. 독자들로서는 헷갈리고 어수선한 느낌을 받을 수 있겠지만, 결국은 하나의 결말을 향해 간다.

  당시 소설 속의 조선 불교계는 단종에 이은 새 임금으로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을 지목한다. 어느 날 안평대군은 자신이 꿈속에서 거닐었던 무릉도원의 모습을 화공인 안견에게 그림으로 그려내게 한다. 이렇게 해서 나온 그림이 바로 <몽유도원도>이다.

  그런데 안견이 그림을 그리기 전에 승려 만우는 이 그림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한다. 그림에 사찰과 108명의 승려를 표현해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안평대군에게 제시한다. 하지만 완성분에는 승려도 사찰도 하나 없었다. 안평대군의 집에 모인 22명의 사람들은 몽유도원도에 안평대군이 쓴 글과 그림을 찬양하는 시와 시문을 하나씩 적었다.

  불교계는 이 그림이 무릉도원을 소재로 한 그림이지만, 무릉도원과 같은 세상을 만들어내는 즉, 안평대군이 신탁(神託)을 받았다는 내용으로 해석하고 이용하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안평대군은 정치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고 그림에만 관심을 둔다. 그러자 불교계의 실망은 컸다.

  그러던 중, 한 가지 절묘한 사건이 발생한다. 도첩을 소지하지 않은 채 한양을 돌아다니던 승려 덕중이 나졸들에 잡혀 형조로 이송되고 있었는데, 이를 본 수양대군이 도첩을 잃어버린 승려에게 벌주려 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승려를 풀어준다. 이 소문은 불교계에 퍼졌고, 불교계는 수양대군이야말로 신탁이 될 인물이라면서 은밀한 계획에 착수한다.

  불교계를 대표하는 <백팔장>과 수양대군이 밀약을 작성하고 서명한 뒤 서로 한 장씩 나눠 보관하기로 한다. 그리고 밀약서의 분실에 대비하여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훈민정음 언해본으로 한데 엮은 <월인석보> 1권의 제일 끝부분에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도록 ‘총일백(總一百) 팔장(八張)’이라는 글자를 삽입해 다량으로 찍어 배포한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수양대군은 밀약서 원본이 한 장 들어 있는 서철을 백팔장에게 보내고자 임영대군의 아들인 괴성군으로 하여금  덕중에게 전하도록 한다. 당시 수양대군 사저에는 여종 덕중(나중에는 후궁인 소용 박씨)과 승려 덕중이 머물고 있었다. 괴성군은 승려 덕중에게 줄 편지를 여종 덕중에게 주라고 한 것으로 잘못 이해한다. 편지를 받은 여종 덕중은 괴성군이 자기에게 보내는 연애편지로 이해하고 이때부터 사모의 정을 키워나간다. 처음부터 잘못된 만남이었다.

  그러던 중, 후궁이 된 여종 덕중이 괴성군에게 보낸 연서(연애편지)가 발각된다. 사실 발각이라고 하기에는 적절치 않다. 편지를 받은 괴성군은 아버지인 임영대군에게 이 사실을 말했고, 두 부자는 그 편지를 들고 수양대군을 만난다. 그러면서 자신들을 처벌해 줄 것을 요구한다.

  편지를 읽어 본 수양대군은 노기가 탱천했다. 편지 내용에 백팔장이라는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영원히 비밀로 부쳐져야 할 것이 튀어나온 것을 본 수양대군은, 불교계와 밀약한 내용을 후궁인 소용 박씨가 알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 편지를 전달했던 환관 둘과 나인 둘을 처형한다. 당사자인 소용 박씨도 자신이 직접 국문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묻자 소용 박씨는 ‘백팔 글자’라고 말한다. 수양대군은 백팔장의 정체가 밝혀지면 큰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을 직감하고 왕족, 특히 조카와 숙모 간에 있어서는 안 될 연애편지를 주고받은 것으로 죄를 몰고 간다. 결국 소용 박씨는 처형당한다.

  여기서 당사자인 괴성군과 임영대군은 왜 처벌을 받지 않았을까. 그것은 수양대군이 불교계와의 신탁에 이 둘을 끌어들이려고 했기 때문이다. 괴성군으로 하여금 승려 덕중에게 편지를 전하라고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면 자연히 임영대군도 계획에 동조한 것으로 되기 때문이었다. 수양대군의 치밀함과 무서움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시간이 흘러 수양대군은 백팔장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밀약서 원본 중의 한 장은 승려 덕중이 보관하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수양대군은 소용 박씨의 사건에서 자칫 비밀이 탄로될 뻔했으니, 소용 박씨가 어딘가에 보관하고 있는 밀약서와 승려 덕중이 보관하고 잇을 것으로 보이는 밀약서를 없애면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묻는다. 이에 백팔장은 동의한다.

  수양대군 사저(私邸) 시절에 승려 덕중은 귀성군과 서로 잘 통하는 듯이 보였다. 당시 귀성군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던 여종 덕중은 무의식중에 승려 덕중 앞에서 ‘백팔장’이라는 말을 뱉었다. 그러자 승려 덕중은 깜짝 놀라며, 어떻게 백팔장과 연락을 취하느냐고 물었다.

  그 다음번 만남에서 승려 덕중은 여종 덕중에게 훈민정음 세종어지 108자가 든 종이를 보여주며 백팔장에게서 받은 것이라며 은근히 자랑했다. 여종 덕중은 그 종이를 갖기를 원했고, 승려 덕중은 그것을 순수히 여종 덕중에게 건넸다.

  귀성군이 건네주었던 백팔장이라 적힌 종이와 백팔장이 주었다며 건네준 승려 덕중의 종이를 붙이니, 두 개가 꼭 맞물리는 한 장이 되었다. 궐에 들어와 후궁(소용 박씨)이 된 후, 여종 덕중은 귀성군이 보내준 두 쪽짜리 연서를 하나로 이어 벽에 붙이고, 종이로 덧발라 숨겨 두었다. 나중에 처형당하는 순간까지 소용 박씨는 그 연서가 밀약서임을 알지 못했다.

  이 소설에서는 108이라는 숫자가 자주 등장한다. 괴성군과 소용 박씨가 편지를 주고받은 장소도 후원 뽕나무밭의 108번째 뽕나무였고, <월인석보> 1권의 끝부분에도 백팔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여기서 백팔장은 108명의 승려를 뜻한다. 본래 백팔장은 승려들의 모임이었다. 백여덟 명의 승려들이 백 여덟 조각의 천을 이어 만든 옷을 입었다 하여 수양대군은 백팔장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던 것이다.

  <모반의 연애편지>는 삼촌에 의해 꽃도 피워보지 못한 채 슬프게 죽어간 어린 임금 단종과 왕위에 오르기 위해 치밀히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수양대군의 정치적 야망을 잘 보여주는 흥미진진한 역사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