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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일에 치러진 제5회 전국 동시지방선거에서 안희정 후보는 경합을 벌이던 박상돈 후보를 누르고 충남도지사에 당선됐다. 안 당선자의 승리는 충청도의 역사를 다시 쓰겠다는 꿈, 쓰러진 국민통합의 깃발을 다시 세우겠다는 소망, 분권과 균형의 새 시대를 열겠다는 그의 평소 소신과 철학이 빚어낸 결과였다.

취임을 엿새 앞두고 있는 안희정 당선자는 분명히 도정에 새로운 바람과 변화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역대 도지사 중 가장 젊은 도지사이기도 하다. 안 당선자가 도정운영의 키워드로 내세운 것은 행복, 사람, 중심, 변화, 충남이다. 또 이를 바탕으로 ‘행복한 변화, 새로운 충남’이라는 슬로건을 제시하고 있다.

그동안 충남도정 인수를 위한 ‘행복충남위원회’에서 각계각층의 전문가와 공무원들이 참여해 확정한 도정운영의 기조는 분권과 균형, 참여와 창의, 소통과 신뢰이다. 이러한 안희정 당선자의 성장과정과 시련, 참여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회고 그리고 국가발전에 대한 소신과 철학 등을 한데 정리한 책이 나왔다. 안희정이 직접 쓴 <담금질>이 그것이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청소년기의 성장과정과 대학생활, 정치입문과 참여정부에서의 활동 등을 다루고 있고, 다른 하나는 대통령선거와 관련하여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구속돼 감옥생활을 하는 동안 틈틈이 쓴 글을 엮었다. 책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도 한데, 안희정의 인생, 철학, 정치, 우리 사회에 전하는 메시지 등이 담겨 있다. 마지막 하나는 개인 블로그나 언론에 기고한 글 및 참여정부평가포럼 기조연설문 등이 실려 있다.

안희정은 1964년에 논산시 연무읍 마산리에서 2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를 낳기 전, 어머니는 방안 가득히 광채를 발하는 놋 세숫대야를 닦는 태몽(胎夢)을 꾸었다고 한다.

안희정이 태어나기 바로 전 해에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소장은 민정당 윤보선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안희정의 아버지는 당시 철물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등장에서 새로운 시대를 예감하셨던지 박정희의 ‘정’자와 ‘희’자를 바꾸어 ‘희정(熙正)’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집안사정이 넉넉했던 덕에 안희정의 어릴 적 생활은 부족함이 없었다. 어머니는 그가 필요하다면 뭐든 다 해주었다. 안희정은 초등학교 때부터 매일 새벽 산을 타며 체력을 길렀고, 정의롭지 못한 일이라 여기면 가만히 보고 있지를 안했다. 그의 성격은 일찍부터 나서기 좋아했던 것 같다. 지금도 어색한 것, 잘못된 것은 참지 못한다고 한다.

그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를 잠시 다닐 때까지 늘 반장을 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학생회장도 맡았다. 공부는 전교에서 3등 안에 들었고, 1년에 한두 번은 전교 1등도 했다. 초등학교 때는 핸드볼 선수로, 중학교 때는 농구선수로 뛰었고, 사격 선수를 하기도 했다.

안희정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사회에 대한 의식의 싹이 자라기 시작했다. 몇몇 야당적 성향을 가진 선생님으로부터 박정희 대통령의 정치가 ‘독재’라는 말을 들었는데, 감수성이 예민하던 청소년기에 그가 받은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민중을 고민했다. 조숙했다고나 할까. 책가방에는 <러시아 혁명사> 등 교양서적이 빠지지 않았고, 나중에는 교과서를 죄다 중고서점에 팔아버리고 사회과학 서적을 구입해 교과서로 대체했다. 또, 서민들의 고충을 체험해보고자 대전역 앞에서 노숙자들과 함께 밤잠을 자기도 했다.

안희정은 고등학교 1학년 때,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 시국을 논하던 편지가 중앙정보부 손에 들어가 중앙정보부 대전지부에 끌려갔다. 거기서 1박 2일 동안 취조를 받고 풀려났다. 이일로 학교에서는 전학을 요구했고, 그의 아버지는 전학 퇴교서를 가지고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 그를 받아주는 학교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서울로 주소를 옮긴 뒤 성남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대학생들과 자주 어울리고 학생운동도 하다보니 자연히 학교생활에 적응이 될 리 없었다. 아버지를 설득한 끝에 학교를 자퇴했다. 그 후 학생운동에 참여도 했지만, 학생운동을 하려면 대학에 가야겠다는 생각에 검정고시를 준비했고, 두 달 만에 합격해 고려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했다.

안희정은 교내에 존재하던 14개 서클을 해체하고 단일한 지하조직인 ‘애국학생회’를 만들었다. 1987년에는 ‘반미청년회’를 조직했고, 대학별 운동권 조직의 목소리를 하나로 묶은 최초의 공개조직인 ‘전대협’을 출범시켰다. 하지만, 이듬해 반미청년회 사건으로 국가보안법상의 이적단체구성죄 혐의로 검거됐다. 1988년 12월에는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2심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출소했다.

안희정은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 비서실장이던 김덕룡 의원 비서생활을 시작으로 여의도 제도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았다. 하지만 그가 보는 국회는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그런 국회가 아니었다. 이런 정치에 실망을 느끼고 있던 중에 3당 야합이 일어났다. 이기택, 박찬종, 이철, 노무현 등 7인은 3당 합당을 거부하며 잔류를 선언했다. 이들은 야합이 아닌 야당의 길을 가겠다며 ‘꼬마민주당’을 창당했다. 안 당선자는 김덕룡 의원실을 나와 꼬마민주당 창당발기인으로 들어가 이철 사무총장 밑에서 비서로 일했다.

하지만, 안희정은 한국 정당정치로는 역사의 진보와 개혁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사직서를 내고 공사판에서 두어 달 건설일용직 생활을 했다. 1992년 3․24총선까지만 도와달라는 이철 의원의 간곡한 부탁을 차마 뿌리치지 못한 안희정은 그를 국회의원으로 당선시키고 나서 비서직을 그만뒀다.

안희정은 대학선배가 운영하는 출판사에 취직했다. 영업부장직을 맡아 전국을 돌아다녔지만, ‘이 직업도 내가 갈 길이 아니다’라는 판단에 출판사를 그만두었다. 그러고 나서 제적된 지 거의 10년 만에 대학에 복학했고, 1995년 2월에 대학을 졸업했다. 제적과 복학을 거듭한 지 12년 만이었다.

안희정은 노무현 의원을 만나면서부터 인생의 큰 변화를 맞는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운영했다. 이광재 의원이 그를 찾아와 노무현 의원을 도와 연구소를 해보자고 간곡히 설득했다. 그가 연구소에 합류하기로 결정한 날, 한 고깃집에서 이광재 의원과 밤이 새도록 술을 마셨고,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둘이 “한 번 끝까지 가보자”고 맹세했다. 여기서 ‘끝까지’라는 개념은 변화와 개혁을 주창했던 사람들이 이 사회의 주도세력이 되는 것이었다.

안희정은 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철학과 신념이 있는 노무현 의원을 같이 일하고 싶은 정치인으로 꼽았다. 또 그분이 갖고 있던 탁월한 민주적 리더십과 문화적 코드(비주류의식을 공유함)도 맞았다. 당시 노무현 의원은 “정치는 국민의 상식을 결정한다”고 말했고, “이기는 게 장땡이다. 꿩 잡는 게 매다”는 식의 그릇된 역사를 끝내자고 했다.

하지만, 당시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살림은 어려웠다. 노무현 의원은 손수 의원회관을 찾아가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회비를 찬조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일일이 설명하고, 의원 세비(歲費)에서 연구소 회비가 자동납부 되도록 의원들 도장을 받으러 다녔다.

대장이 그렇게 애쓰는데 참모들이 손가락이나 빨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대장 못지않게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안희정을 비롯한 직원들은 의기투합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연구소 자체수익을 위해 다양한 일도 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생산력은 높았다. 21세기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여의도가 아닌 지방자치에서 찾아냈기 때문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통한 참여와 자치 그리고 개혁이 21세기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방향이라는 것을 모두가 공감했다.

결국 안희정은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의원을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출범은 한국사회에서 비주류에 머물러왔던 개혁세력이 최초로 집권한 사례이다. 또한 김영삼의 3당 합당이나 김대중 대통령의 DJP 혼혈이 아닌, 자기 원칙을 고수하고 자기 정체성을 지키고 집권한 유일한 사례이기도 했다.

안희정은 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 사회과학 서적을 폭넓게 섭렵한 탓에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의식이 날카롭고 깊이가 있다. 감옥에 있으면서 지인들이 넣어 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가 쓴 글은 노트로 총 35권에 이르고, 이런 글을 쓰는 데 볼펜 스물여섯 자루가 들었다.

그가 감옥에 있으면서 쓴 글에는 우리 정치와 나라걱정에 대한 내용이 많다. 또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소복이 담겨있다.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구속돼 감옥생활을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서운함이 추호(秋毫)도 없다고 했다. ‘좌희정 우광재’로 불릴 정도로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활동했지만, 변변한 보직을 받지 못했다. 그것은 혹시라도 노무현 대통령에게 부담이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고자 했던 것임을 솔직히 말하고 있다.

안희정은 감옥에서 하루는 가족에 대한 걱정과 미안한 마음을 이렇게 글로 나타냈다. ‘아내와 아이들 생각에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라고. 어떤 날은, 면회 온 아내의 얼굴이 무거워 보였다고 했고, 아내의 생일인데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나타내기도 했다.

오는 7월 1일이면 안희정 당선자는 제36대 충청남도지사로 공식 취임한다. 젊지만, 누구보다도 파란만장한 인생을 겪은 그가 200만 도민의 삶의 질과 행복을 위해 어떠한 일들을 펼쳐나갈지 벌써부터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도민들은 안 당선자가 민선5기 슬로건으로 내건 ‘행복한 변화, 새로운 충남’처럼 도민 모두가 행복한 충남, 새로운 변화를 통해 충남을 더욱 발전시켜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런 도민의 기대와 여망을 등에 업고 출범하는 ‘충남호’가 어떤 행보(行步)를 이어갈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