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한 인심, 내가 이 책을 사랑하는 이유

1. 책 뜯어 먹기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했는가. 이제는 결혼 18년 차를 내딛고 있지만 결혼 후 아내의 요리 솜씨는 한마디로 기가 막혔다. 김치찌개는 매번 끓여도 다른 맛이요, 미각을 잃은 사람처럼 짜거나 싱겁거나 맵거나 달거나 그때  그때 달랐으니 수십 년 어머니 손맛에 길들여진 나로서는 그저 사랑의 정신력으로 매일매일을 극복해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거의 완벽 수준으로 요리를 해대고 있으나 사람의 혀가 워낙 간사한지라 더욱 새로운 맛을 요구하곤 한다.

내가 요리에 관련된 책을 직접 사서 읽어본 일은 딱 두 번째다. 하나는 중국에 6년간 홀로 생활하며 한국 음식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직접 재료를 조달하고 요리를 해먹으며 어머니와 아내의 고마움을 몸소 체득했던 00 요리책. 그리고 또 하나가 바로 [양희은이 차리는 시골 밥상]으로 이제는 한정식 전문음식점에나 가야 맛볼 수 있는 향토 시골 밥상의 소개라는 면에서 향수를 자극하는 측면이 강한 책이다.

신토불이(身土不二), 역시 한국인은 제나라 땅에서 나고 자란 음식이 체질에 맞는가보다. 아동기와 청년기 때의 입맛과는 달리 장년기에 이르고 보니 깔끔하고 구수한 옛 맛이 그리워진다. [양희은이 차리는 시골 밥상]에 소개된 버섯과 호박, 동치미와 김치, 그리고 봄 미각을 자극하는 나물들. 이름만 들어도 친근하고 구수한 게 산해진미가 따로 없다. 양희은 씨가 진행하는 [양희은의 시골 밥상]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른 듯 소박하고 담백함이 마주한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왔지만 우리 때야 서울도 시골과 진배없던 시절이었다. 배고프면 흙이라도 훑여 먹고 설익은 복숭아와 밭에 심어 놓은 무를 먹으며 자라왔으며 어머니가 시래기 국이라도 차려주시면 밥 두 공기를 비우곤 했으니 이 책을 보며 어찌 향수를 잊을 수 있을까.

손맛의 고수를 만난 양희은 씨. 그 고수들이 누구이더냐. 바로 우리의 할머니고 어머니 아니던가. 평생을 지아비와 자식새끼들 먹이려 새벽부터 아궁이에 불을 지핀 고생의 흔적은 쪼글쪼글한 주름살에 오롯이 박혀있다. 충청도와 경상도, 전라도와 강원도, 그리고 제주와 경기도를 넘나들며 건강한 먹을거리와 약이 되는 한국인의 음식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나고 보니 운치 있는 작품이 따로 없다.

2. 끄트머리

"시골밥상은 서양식 입맛을 안 따라간다. 이 조리법과 입맛은 우리 핏속에 흐르는 맛이다. 그걸 잊거나 남에게 내어주면 안 된다. 또는 서양 사람들 먹기 좋으라고 먹기 쉽게 그들의 양념 맛을 따라가서도 안 된다. 어린 날 우리가 외갓집에서 얻어먹던 그 음식의 맛을, 지금 어린 사람들이 그대로 배우고, 그대로 맛을 낼 줄 알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야 자손대대로 건강하게 살 수 있다."...본문 중

[양희은이 차리는 시골 밥상]에는 '고수레'가 담겨 있다. 토테미즘이나 샤머니즘 정도로 치부될 수 있겠으나 정겹고 넉넉하고 여유로운 시골 인심은 전통적인 역사의 줄기이다. 넉넉한 인심, 내가 이 책을 사랑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