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군지 알고 싶어? 

 

몇 일전 유언과 유서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유서를 쓴다는 것. 그때의 마음만큼은 진실되고 나를 저만치 아래로 낮추는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죽음이 임박한 순간, 두려움보다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감사의 마음 그리고 자신의 삶의 여정을 통해 후대에 교훈이 되는 말을 유언과 유서로 대신해 일러주고 싶은 마음 말이다. 특별히 유언을 남기지 않았더라도 그 사람의 삶을 관통하는 철학이나 좌우명 등을 유언으로 본다고 한다. [나의 [빈칸] 책]이 어찌 보면 이와 같은 역할을 대신 해 준다고 볼 수 있다. 

여기 재밌는 책이 한 권 있다. [나의 [빈칸] 책]은 왠지 허전하고 공허한 느낌마저 드는 빈칸으로 구성된 책으로 공간을 하나둘씩 채워가다 보면 어느새 나만의 이야기가 담긴, 또 내가 만든 책으로 완성되는 독특한 책이다. 아니 완성이라기보다는 이전과 이후를 끊임없이 채워가는 미완의 책.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가끔 어느 때는 내가 누구인지 묻고 싶은 때가 한 두 번씩은 있다. 나란 존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법상 스님의 말씀처럼 우리 인생의 가장 근원적인 물음은 '나는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깨닫는 그 순간까지, 깨닫지 못한다면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 언제까지고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이 바로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이라는 말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내 생각과 기억의 모든 것,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수만 가지 내 주변의 잡다한 것의 기록을 통해 진짜 나의 모습을 보게 해 주는 기회를 제공한다.  

나의 [뇌 구조], 나의 [탄생], 나의 [꿈], 나의 [가족], 나의 [탐욕], 나의 [거짓말], 나의 [천사/악마] 등 기록할 수 있는 내용만 해도 100개에 해당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몇 가지 소개하자면 나의 [로맨스] 부분에선 '내게 날아온 대시'와 '나의 짝사랑 행각'을 나의 [약속]에선 '약속에 대한 나의 감각과 나의 습관', '이런 약속은 절대 안 한다'와 '내가 즐겨 남발하는 약속', 그리고 '내가 나에게 한 제일 중요한 약속'과 '내 생애를 걸고 한 제일 무거운 약속' 등 자신을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는다면 결코 쉽게 채워나가기가 쉽지 않다. 매우 구체적인 빈 칸들은 마치 짧은 시간에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지치기하듯 나열시키는 '브레인스토밍' 기법과도 흡사하게 여겨진다. 

내 가족, 내 친구, 내 주변의 사람과 가장 중요한 나 자신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나는 나의 영원한 동반자다. 또한, 나는 나의 가장 뛰어나고 적극적인 조력자일 뿐 아니라 그와 반대로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단순히 숨만 쉬고 생각하는, 뼛조각에 살덩어리를 붙여놓은 생명체가 아니다.  

빈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