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오가며 방황하는 우리의 자화상  

 

1. 저자 소개 및 저술 의도 

저 : 밀란 쿤데라

1929년 체코의 브륀에서 야나체크 음악원 교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밀란 쿤데라는 그 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프라하의 예술아카데미 AMU에서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감독 수업을 받았다. 1963년 이래 「프라하의 봄」이 외부의 억압으로 좌절될 때까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운동'을 주도했으며, 1968년 모든 공직에서 해직당하고 저서가 압수되는 수모를 겪었다. 『농담』과 『우스운 사랑』 2권만이 쿤데라가 고국 체코에서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2. 주제 및 요약

역사의 상처라는 무게에 짓눌려 단 한 번도 '존재의 가벼움'을 느껴 보지 못한 현대인.

오늘날 '참을 수 없는' 생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오가는 우리들의 자화상.

20세기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밀란 쿤데라의 대표작.
4명의 주인공을 통한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벼움. 인생의 허무와 덧없음.

 

3. 책 뜯어 먹기

언급했듯이 내가 고전을 좋아하는 이유는 시대를 관통하고 미지의 허상에서 역사를 만나 인간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는 수많은 사유와 편린들을 면밀하게 관찰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현대 문학의 장르도 세월이 지나 후대에 불멸의 고전으로 남겠지만, 당시의 사회상과 인간의 고뇌, 비루함, 그리고 다면적인 존재로서의 인간 군상의 모습과 이데올로기의 대립이라는 칼끝이 폐부속을 관통하며 망각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을 작가 정신이라는 시대적 요구의 견지에서 볼 때 고전 속 인간의 맥락과 같다고 볼 수 있다.

 

한때 유행처럼 읽혀졌던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프라하의 봄을 시대적 배경으로 반체제 소설로 낙인된 후 22년 만에 쿤데라의 조국 체코 현지어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는 소식을 들은 지도 이제 4년이 되어간다. 인간의 존재를 무거움과 가벼움으로 양분하여 영원과 순간이 공존하는 모순된 사랑의 모습을 연출해낸 이 작품은 불완전한 인간 존재에 대한 문제의 제기와 4명의 주인공을 통해 인간 존재의 한계를 드러내고자 한다.

 

토머스(가벼움)-모든 삶의 무게와 얽매임으로부터 도피를 추구하며 사랑과 섹스는 별개라고 생각하고 여자들과 자유롭게 애정을 나누는 외과의사. 테레사로부터 삶의 무거움을, 사비나의 삶의 가벼움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테레사(무거움)-스스로에 대한 존재감에 끊임없이 회의하고 삶의 무거움 속에서 토머스와의 운명적 사랑을 믿는 카페 여종업원. 무거움에 자유롭지 못했으며 영혼의 무게는 더욱 가중되는 인물.

 

사비나(가벼움)-자신을 구속하는 모든 이데올로기를 증오하며 정치적 사회적 무거움으로부터 철저히 자유로움을 갈망하는 화가.

 

프란츠(무거움)-사비나의 가벼움을 사랑하나 그녀에게 배신을 당하는 대학교수.

 

토머스와 테레사, 사비나와 프란츠의 인물의 가벼움과 무거움으로 대변되는 상반된 아포리즘은 상충(相衝)과 상응(相應)이 공존하는 이중구조의 틀 안에서 끊임없이 전개된다. 운명적인 사랑을 추종하는 테레사의 무거움을 이해할 수 없는 토머스의 죄책감 없는 애정행각과 가벼움을 이해하지 못해 오직 반항심만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으려는 테레사의 끝없는 갈등과 반목의 날 선 검은 예리하기만 하다. 토머스는 테레사라는 무거움과 조국과 가족, 그리고 프란츠를 배신하고 자신을 구속하는 모든 이데올로기를 증오하며 홀로 외로움을 고수하는 사비나라는 가벼움을 동시에 사랑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이 소설에서 매우 특이한 점이 인물에 대한 상징이다. 자유와 방종으로 다가오는 사비나와 토머스, 정도와 진지함을 내포하는 테레사와 프란츠. 즉,  밀란 쿤데라는 의미와 무의미, 무거움과 가벼움, 영혼과 육체, 운명과 우연 같은 근본적인 인간 실존 문제를 4명의 주인공의 가슴에 관통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무거움에 가벼워질 수 없는 것이 또는 가벼움에 무거워질 수 없는 것이 사랑과 성의 분출로 말미암은 카타르시스를 통해 잠깐이나마 해갈될 수도 있겠지만 영원한 사랑과 순간의 사랑, 의미와 무의미, 경중 등의 메타포는 궁극적인 가벼운 인간 존재의 한계를 의미한다고 본다,

 

'그래야만 한다.'라는 내적 명령을 철저하게 따르고 살아온 삶의 무게를 덜어내기 위해 필연을 우연으로, 무거움을 가벼움으로 바꾸고자 했던 욕망과 죄의식 없는 자아도취에 빠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테레사와의 숙명적인 만남을 우연이자 필연으로 받아들인 토머스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가벼움에 참을 수 없는 모멸감을 느끼면서도 진지한 삶, 즉 무거움을 갈망하는 테레사의 모습에서 인간은 영혼과 육체가 임계치를 빗겨 하나 될 수 없는 불완전 존재임을 투영한다.

 

"영원히 사라져 가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삶은 하나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 그것은 아무런 무게도 없는 하찮은 것이며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다는 것을. 삶이 아무리 잔인했든, 아름답거나 찬란했든, 그것은 마찬가지다." 니체의 영원회귀론과 가벼움과 무거움을 존재의 대립으로 보았던 그리스 철학자 파르메니데스를 화두로 던지는 쿤데라는 체코 프라하의 봄을 역사적 배경으로 역사와 인간, 애욕과 인간이라는 근본적인 인간 실존의 문제를 지적 성찰로 풀어낸다.

 

4. 끄트머리

[농담]에서 나타난 인간 허무의 모티브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도 발견된다. 사랑과 성, 역사와 이데올로기 속에서 끝없는 갈등과 반목, 방황을 거듭한 이들이 세월이 지난 뒤에야 깨달은 것은 인간의 존재가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라는 것. 이것이 인간 존재의 덧없음, 곧 허무(虛無)다.

참을수없는존재의가벼움, 농담, 밀란쿤데라, 민음사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