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죽기로 결심한 여자, 베로니카가 있다. 삶이 너무 뻔해서, 자신이 세상에 아무런 쓸모가 없는 존재라서, 영원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 그녀의 결심은 이루어질까? 혹은 또 다른 결심을 하게 될까. 삶의 끝자락에서 만난 생의 이야기.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이야기는 베로니카가 수녀원 방 안에서 수면제를 먹으며 자살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가장 우아하게, 폐 끼치지 않기 위해 수면제 사십알을 뱃 속으로 집어 넣는 베로니카. 그러나 눈을 떴을 때, 그 곳은 천국도, 지옥도 아닌 정신병원 빌레트였다. 게다가 기껏 돌아온 삶에서 그녀가  듣는 이야기는 심장에 무리가 생겨 몇 일밖에 살지 못한다는 의사의 말이다.

 

이제 스물몇살의 젊은 아가씨는 남은 몇 일의 생에 몸부림친다. 미치지 않았음에도, 미친 사람들이 가득한 정신병원에서 그녀는 가리는 것 없이 자신과 마주한다. 쓸데없이 가지고 있던 자존심을 버리고 자신을 옭아매던, 보이지 않는 밧줄들도 풀어버린다. 마치 미쳐 날뛰는 망아지마냥. 그러나 상관없다. 빌레트는 미친 사람들 뿐인 정신병원이니까.

 

[자존심이라는 게 뭔데? 모든 사람들이 널 착하고 예의 바르고,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넘치는 사람으로 여기길 바라는 게 자존심이야?] 142

빌레트의 다른 환자 마리아의 말에 베로니카는 변해간다. 도드라져 보이지 않게, 얌전한 아가씨로 살던 그녀는 빌레트에 와서 이기적인 여자로 바뀌어간다. 원하지 않을 땐 고래고래 소리도 지르고, 나이든 다른 환자의 뺨을 내리치기도 한다. 한밤중 살롱에 있는 피아노를 치기도 한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표현하기. 바깥 세상에서 한다면 ’미쳤다’며 손가락질 받을 행동들을. 그러나 그런 베로니카를 보는 미친 사람들의 눈길을 온화하기만 하다. 잘했다고, 그렇게 하는거라고 격려까지 한다.

 

미쳤다, 는 표현을 생각해본다. 모두가 다 똑같은 행동을 할 때 혼자 다를 때, 전체의 물을 흐릴 때, 우린 그 사람을 향해 손가락질을 한다. ’당신은 미쳤다’면서. 그러나 우리가 미쳤다고 몰아내 빌레트에 모인 ’미친’ 사람들은 되려 이렇게 말한다. ’난 감히 미친 사람이 될 거’라고. 그들은 빌레트 밖의 사람들을 보고 미쳤다한다. 도대체 왜?

 

빌레트의 원장 말을 들어볼까.

["... 부인은 그 누구와도 닮지 않은 ‘다른’ 사람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닮기를 원하죠. 그건 내 관점에서 볼 때 심각한 병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모든 사람과 닮기를 자신에게 강요하는 게 심각한 거죠. ..."] 241

애초에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르게 태어났다. 같이 생각할수도, 행동할수도 없는 게 당연한거다. 그럼에도 세상은 우리 모두를 같게 만드려 애쓴다. 튀지 말라고, 세상에 묻혀 가라고 그렇게 가르친다. 물론 이런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미쳤다고 분류되지 않기 위해 모두와 같이 미친척을 하며 살아가는 것 뿐이다.

 

시한부 삶의 베로니카는 빌레트를 변화시킨다. 누군가는 다시 미친 세상으로 돌아가고, 누군가는 자기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온다. 미치는 일의 극한에서 자기를 보고 돌아온 보름달의 밤이 지나고 베로니카도 생으로 돌아간다. 이젠 혼자가 아닌채로.

 

주위를 둘러본다. 세상엔 미친 사람도, 안 미친 사람도 많다. 아니, 미친다는 말 또한 누군가의 편견일 뿐. 그저 제 영혼에, 제 생각에 몸을 맡기고 살면 그게 충분한 생은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베로니카에게 지혜를 준 제드카의 말대로 ’다른 사람들이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꿈꾸는 대로 내 삶을 살’면 그만인 것이다.

 

문득 책장을 돌아보니 로랑스타르디외의 <영원한 것은 없기에>가 눈에 띈다. 죽음을 이겨내고 사랑을 시작하는 베로니카, 에뒤아르와는 반대로 죽음 앞에서 다시 사랑과 생을 경험하는 주느비에브, 뱅상의 이야기. 다르지만 비슷한, 강한 느낌을 전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