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고백하는 겸손한(?) 작가가 있다. '세상의 모든 독자들은 작가에게 관용이란 걸 베풀 필요가 없다. ... 귀싸대기 맞을 각오는 되어있다.' (p.391) 심사위원 전원 일치로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김언수 작가가 수상 소감 말미에 적어둔 글귀다. 책을 다 읽은 독자의 입장에서 한 마디 하자면. "귀싸대기는 좀 약하고, 이런 소설 보여줘서 고맙수다, 넙죽." 현실감 넘치는 상상력을 선사해준 그에게 박수 한 번 쳐주고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이야기 첫 머리에 일단 못부터 박아둔다. 이 캐비닛은 별거 아니니 기대따위 하지 말고 읽으라고. (기대하고 싶어도 누가 감히 이 소설에 대해 기대란 걸 할 수 있는거지? 기대라는 건 사전정보가 있을 때 가능한거 아니냔 말이지.) 이어지는 생뚱맞은 실바리스 이야기. 거짓말쟁이 서술자가 어쨌다고? 하는 순간, 이야기는 시작된다. 일반인과 다른 '심토머'들의 이야기. 이제부터 당신은 거짓말이라 믿기지 않는 '구라세상'에 초대된다. (물론 단순한 구라는 아니다!)

 

심토머(symptomer)에 대해 먼저 얘기해볼까. symptom, 즉 증상을 가진 사람들이란 얘기다. 무슨 증상? 흔히 말하는 일반인과 어딘가 다른 거다. 혹자는 급변하는 세상에 대쳐하기 위해 먼저 진화한 사람들이라고도 한다. 별별 사람들이 다 나온다. 손가락 끝에서 은행나무가 자라질 않나, 혀가 도마뱀과 일체화되질 않나, 몇 년씩 잠에 빠져드는 사람에, 기억을 섞고 왜곡하는 사람들. 심지어 사랑을 위해 고양이로 변하고 싶다는 사내까지 있으니...... 볼장 다 봤다.

 

여기까지 보면 뻔하디 뻔한 SF공상과학 소설 아냐? 란 질문을 던져올지 모르겠다. 천만의 말씀! 어느 순간 말도 안되게 느껴졌던 심토머들에 공감하게 된다. 이 퍽퍽한 세상 살다보면 저럴수도 있지,란 생각이 드는거다. 에이~ 설마? 설마가 사람잡는다. 당신도 책을 넘기는 어느 순간 이렇게 물어볼지 모른다. "저도 심토머인가요?" 아니다. 그저 당신은 조금 힘들 뿐. 그럭저럭 이 도시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책은 답변한다.

 

이 지점에서 작가의 탁월한 구라 능력이 빛을 발한다. (미리 고백하자면) 이 책에 나온 모든 내용은 '뻥'이다. 순도 100% 거짓말. 그럼에도 믿는거다. 어딘가 저런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혹 나도 저렇게 될지 모른다고. 그 불안이 또다른 심토머를 만들어낸다. 소설 속 평범했던 주인공처럼. (그 이야기에 대해선 직접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그러나 작가가 진짜 구라만 친걸까? 속알맹이 없는 허접스레기같은? 아니다. 수상자 인터뷰에서 전경린은 말한다. '모든 서술자는 거짓말쟁이이다. ... 하지만 모든 소설은 진실에서 출발해서 거짓말을 통과해 진실로 귀결된다.' (p.379) 이 말은 그대로 <캐비닛>에 적용된다. 소설 속 모든 심토머들은 과장된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가 마주하기 두려워 정신병자라고 구분지어놓은 사람들을 (여기엔 일반인처럼 살아가는 수많은 잠재적 정신병자도 포함된다. 나, 당신을 비롯한.) 작가는 심토머란 빨리 진화된 자들로 바꿔 적절한 유머와 뻥으로 반죽해놓은 것이다.

 

작가는 '캐비닛'이 그저 여러 이야기를 담아놓은 통일 뿐이라 말한다. 그러나 이젠 알 것이다. 캐비닛은 단순한 통 이상이란 사실을. 그러니 다시 곱씹어보길 권한다. 그저 웃고 지나쳤던 사이사이에 숨겨있던 진실을. (물론 심각한 거 다 빼놓고 그저 재밌게 읽어도 무관하다. 이 책은 그만한 가치도 충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