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루먼 쇼'에서 주인공은 만들어진 세상에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거짓임을 깨닫고 도망치려한다. 가로막은 건 거대한 바다. 그의 트라우마다. 그러나 결국 바다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고 세상의 문을 향해 나아간다. 장면만으로는 정적이지만, 영화 속 어느 장면보다 역동적이다. 주인공의 용기와 희망이 가득차있기에.

 

파울로 코엘료의 <흐르는 강물처럼>(문학동네.2009)의 인상이 그러했다. 정적과 역동적의 교묘한 혼합. 첫 인상은 지루함이었다. 또한 실망이었다. 그의 소설을 즐겨 읽던 나로서는 떠오르는 이미지도, 강렬한 메시지도 없는, 무미건조한 그의 에세이에서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내 입에서 나온 한 마디는 '파울로 코엘료정도 되는 작가의 작품이 이 정도?' 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은 책, 이라는 위상을 갖고있는 작품이었다. 다시 책에 몰입해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했다. 아! 이 책의 묘미는 숨어있는 작가의 목소리를 찾고, 이를 따라 자신의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에 있었다. 그의 소설처럼, 그러나 조금 더 모호한 방식으로.

 

파울로 코엘료는 질문을 던지는 작가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 이렇게 사는 게 올바르다, 선과 악은 이러저러하다...... 그는 한 번도 친절하게 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언제나 답은 독자의 몫. 그의 소설이 오랜 시간 사랑받는 건, 정답을 강요하지 않고 읽는 사람 수대로 다양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흐르는 강물처럼>은 파울로 코엘료 책의 백미다.

 

그가 살면서 겪은 일화, 들었던 얘기, 스스로 만들어낸 우화들이 짤막하게 실려있다. 그러나 전혀 친절하지 않다. 그저 이러저러했다면서 툭 내던지고는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버린다. 그러니 평소 읽던 습관대로 휙 하니 읽어버리면 남는 게 없다. 1~2페이지짜리 짥막한 이야기를 읽는 데는 2~3분이면 족하다. 그러나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3~4분 곱씹어봐야 한다. 이야기 속에 자신을 넣고 생각을 해야한다. 자신만의 답을 묶어내는 이 시간이 책에 역동성을 부여한다.

 

이 작품이 그 자체로서 100점짜리라고 생각치 않는다. 작가와 독자의 소통, 독자의 재고가 있은 후에야 이 책은 100점이 될 수 있는 책이다. 누군가는 발끈할지 모른다. 이 대단한 작가의 주옥같은 말들을 무시하는거냐고. 그렇지 않다. 다만 코엘료의 책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가치가 변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뿐이다. 그 가치의 결정은 책을 읽는, 바로 당신에게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