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속'의 사전적 뜻은 '비전문적이고 대체로 저속하며 일반 대중에게 쉽게 통할 수 있는 일'이다. 여기 어떤 이야기보다 여자의 성에 대해 통속적으로 그려낸 소설이 있다. 전경린의 <열정의 습관>(이룸.2002)이다. 오랜 시간, 아니 지금 사회에서조차 여자의 성은 터부시되어왔다. 비밀로 지켜져야 하는, 감히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수 없는. 그러나 그건 소중해서 지켜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오히려 천대받음, 그 의미에 더 가까웠을 지 모른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전경린은 그간의 터부를 조심스레 깨기 시작한다.

 

여자의 입으로 전해지는 여자의 성은 아름답게 미화되어 있을까? 그렇지 않다. 전경린이 전하는 세 여자의 성은 고통으로 가득차있다. 책에는 세 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사랑을 믿지 않는, 그러나 생의 진부함을 넘어서려고 몸의 봉인을 깨버린 미홍. 비릿한 아픔으로 가득한 첫경험의 기억을 가진 인교, 습관화된 행위만에 길들여있다 새로운 남자와 함께 성에 눈을 뜨는 가현.

 

["이상하지 않아요? 자신의 몸에 타인이 열어주어야 하는, 타인의 권리인 봉인된 곳이 있다는 거. ... 처녀성이란 여성에겐 일종의 신화와 같은 거죠. 소문처럼 떠돌다가 불현듯 현재성을 획득하여 여자들의 삶을 예기치 않는 방향으로, 폭력적으로 편집하는 거예요. 우리의 무의식 속엔 그런 공포가 존재하죠. ..."] p.15

전경린은 미홍의 입을 빌려 말한다. 나의 것인데도 온전히 내 것일 수 없는 처녀성이란 말의 아이러니함을. 게다가 잘못하지도 않은 채 죄의식을 갖고 살아야 하는 수많은 여자들의 공포에 대해. 여자의 성이 가지는 불합리함에 대해 따지기라도 하려는걸까?

 

그러나 그렇게 보여줄 뿐이다. 책 어디에도 해결을 위한 답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문제� 가진 주인공들 또한 나름의 해피엔딩을 갖고 끝나지도 않는다. 과거의 기억을 청산하고 현재를 살아가려 발버둥치지만 여전히 지리멸렬한 사랑과 성의 굴레에서 길을 잃고 헤맬 뿐이다. 미홍은 현실로 빠져나오지 못한만큼의 열렬한 사랑에 빠지고, 인교는 오랜 시간 자신을 사랑해왔다는 한 남자를 만나, 몸이 아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가현은 어린 시절의 사랑과 불륜에 빠져들며 뒤늦게 성에 눈뜬다.

 

세 주인공의 공통점은 사랑이다. 사랑없는 도피, 폭력, 습관으로서의 성이 아닌 사랑의 연장선으로서의 성. 그럼 그게 답인걸까? 새로운 모습의 자신이 낯설어 힘들어하는 가현에게 인교는 이야기한다. '넌 너 자신의 사랑에 충실한 거야. 아무것도 따르지 마. 네 몸과 마음에 정직하면' 된다고. 미홍이 말하듯 사랑이란 '선지피를 뚝뚝 흘리는 혁명과 같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 안에서 여자의 성은 수동적인, 타인에 의해 침범당하는 것이 아닌 여자 자신의 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성이 지폐냄새를 풍기고 다니는 시대에, 한번쯤 생각해볼만한 주제를 던져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