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인생이란 참 묘하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큰 행복이 온 후에는 자연스레 그만큼의 슬픔이 당도한다. 그러나 사람은 어리석게도 행복은 받아들이면서 (불행하게도 그조차 완벽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면서도) 불행은 내처버리려 한다. 행복과 슬픔은 동전의 앞뒷면과도 같은데 우리는 종종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행복만을 취하려 한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에서 또 다시 통속적인 모습을 발견하는가 싶었다. 그러나 불과 19살에 썼다는 이 책에서 그녀는 놀라운 지혜를 선보인다. 그녀는 슬픔에게 작별을 고하는 Adieu가 아닌 Bonjour로 책을 마친다. 회복할 수 없을 듯한 슬픔을 외면하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고 삶의 한 부분에 끼워넣은 것.

 

주인공인 17세 소녀 쎄실은 어느 여름 방학 아버지와 시골 별장에 놀러간다. 그러나 자유로운 행위를 꿈꾸던 쎄실 앞에 장애물이 나타난다. 바람둥이 아버지를 사로잡은 질서있는 여인 안나. 쎄실은 별장에서 만난 소년 씨릴과 아버지의 옛 연인 엘자를 이용해 안나를 떼어놓으려는 계략을 세우고 결국 안나는 그들로부터 떠나간다. 그리고 사고. 결말은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을 쎄실과 아버지에게 남겨둔다.

 

안나의 죽음은 쎄실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남겨주는 듯 보인다. 그러나 고통도 한 순간. 쎄실에게 여름 별장에서의 기억은 단지 기억으로 남는다. 그리고는 '그렇게 되리라고 예측했던 것처럼 예전과 같은 생활이 다시 시작'된다. 아버지는 다시 바람둥이의 생활로, 쎄실에게는 새로운 연인이. 물론 그 여름날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쎄실은 그로부터 오는 슬픔에 Adieu가 아닌 Bonjour라고 맞이함으로써 건강하게 삶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인생을 바라보는 이 유여한 자세란.

 

어린 나이에 썼다고 믿어지지 않는 거침없는 문구들과 삶에 대한 여유로운 자세. 이런 점들이 프랑수아즈 사강을 세계가 사랑하는 여인으로 만들어 놓은 게 아닐까. 특히 이 책에는 사랑을 하고 있는 연인들을 달뜨게 만드는 여러 문구들이 곳곳에 숨어져있다. 안느와 레이몽의 사랑은 한낱 불장난으로 산산조각나고, 쎄실과 씨릴의 사랑은 한 계절 불타오르는 사랑처럼 덧없게 그려졌지만. 그럼에도 그 한 계절 사랑은 충분했다. 적어도 그 순간들만큼은.

 

그래서일꺼다. 소설 속 쎄실이란 소녀가 그리 큰 아픔과 죄책감을 다시금 따뜻이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넘칠만큼 풍족했던 그 여름, 사랑의 기억이 있었기에. 그렇다. 어느 순간이든 그 시간에 충실하다면 우린 행복이 지나간 자리에 들어선 아픔에도 입맞출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 위에 덧칠된 수많은 새로운 생을 다시 살아갈 수 있을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