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한참을 재밌게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잃어버린 기억 속에 "사실 그 장난감은 마법에 걸린 강아지였단다." 라고 말해줄 아빠(혹은 엄마)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아이일까. 안타깝게도 나의 아동기 기억에는 그런 장면이 없지만 운 좋게도 환상나라 글쓰기를 직업으로 가진 아빠를 둔 덕에 즐거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던 소년들이 있다. 톨킨의 아들 마이클과 존. 그들은 <로버랜덤>을 만들어낸 주인공이자, 첫 독자였다.

 

<호빗>, <반지의 제왕>, <실마릴리온>으로 유명한 판타지계의 대부 J.R.R 톨킨. 거침없는 상상력과 글재주로 전세계를 환타지의 즐거움에 빠지게 했던 그의 작은 이야기 <로버랜덤>이 우리에게 찾아왔다. 규모면에서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작지만, 그 안을 채운 환상적인 여행기만큼은 다른 작품에 못지않은 흥미와 기발함으로 가득차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로버'라는 작은 강아지다. 어느 날 뭣도 모르고 파란 깃털 모자 쓴 할아버지의 바지가락을 물어버린 로버는, 마법사의 화를 돋구웠단 이유로 장난감 강아지로 변해버린다. 아, 불쌍한 로버. 다행히 개의 말을 알아듣는 소년에게 팔려가지만, 콧방귀나 뀌던 그는 소년의 주머니에서 떨어져 외딴 바다 모래사장에 홀로 남겨진다. 로버는 원래 크기로 변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다행히 지혜로운 늙은이 프사마토스가 로버 도와주기를 자청하고, 임시 거주지로서 달로 보내버린다. 달 세계라니!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하기 이전 톨킨은 자신만의 달 세계를 만들었다. 천국같은 곳, 그 너머에는 위험이 가득한 곳으로 묘사되는 달. 그 곳에서 로버는 또 다른 로버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꿈세계에서 소년과의 재회는 로버에게 꿈을 만들어준다. 소년이 있는 곳으로 가고싶다는 열망. 로버는 소년과 함께 하얀 집에서의 즐거운 생활을 이룰 수 있을까?

 

맨 처음 로버에게 마법을 걸었던 마법사 -아르타제르젝스- 에게로 돌아가보자. 인어와 결혼 후 바다세계로 들어간 그를 쫓아 로버는 두 번째 신비한 세계로 모험을 떠난다. 그리고 또 다른 로버와의 만남. 바닷물이 반이 될때까지 빌어야 할 로버는 우연찮게 친 사고로 인해 좋게좋게 아르타제르젝스와 화해하고(?) 본래의 몸으로 돌아온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행을 통해 '로버랜덤'이란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 로버. 이름 그대로 어디로 갈지 모르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작은 강아지는 더 이상 작고 보잘것 없는 강아지가 아니다. 꿈 세계에서 가져온 꿈을 이루고, 또 다른 모험을 향해 달려가는 멋진 어른 개가 되어간다.

 

단순한 플롯이지만, 아들에 대한, 자신이 꿈꿔오는 환상세계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작품. 대작가의 소소한 작품은 책이 나온 과정(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정) 이상으로 뭉클한 감동을 전해준다. 어른들에겐 어린 시절의 동심을, 아이들에겐 꿈과 희망의 세계를 보여주는 모험 이야기다.

 

어떻게 읽어도 재밌는 책이지만, 아빠가 무릎위에 아이를 앉혀놓고 이 책을 함께 읽는다면 그 이상으로 이 책을 멋들어지게 소화해낼 수 있을까? 상상만 해도 정말 멋진 풍경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