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스무 살>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은, 지금까지 마음속에 지녀 온 ‘쿨하다’라는 개념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통 어떤 이를 쿨하다고 할 때, 그 사람에게 멋지거나 여유 있고 강하다는 등의 가치를 부여해왔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나의 편견은 조금씩 깨어졌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쿨하다는 말이 세상에서 자기를 지키기 위한 허세, 포기하는 것을 쿨함으로 포장하는 등 부정적인 의미일 수 있다는 것은 간과해왔던 것이다. 
쿨한 연애, 쿨한 이별 등 쿨하다는 수식어를 붙인 표현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쿨한 연애란 이를테면 "연애할래? 안한다 해도 난 괜찮아. 모든 건 네가 받아들이기에 달렸어." 정도의 뜻이다. 이처럼 세상에서 자기를 지키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지는 책임은 멋지게 포기하며 상대방에게 모든 것을 결정할 것을 종용한다.  
 이처럼 쿨하다는 말을 곰곰히 따져보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멋지게만 받아들이고 의식하게 된 것은 쿨하다 못해 차가워져 가는 세상에 나 또한 얼음 같은 인간이 되어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으로부터 몇년 전 21살 어학연수 시절, 영어회화 수업은 늘 원어민 선생님의 질문에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는 방식이었다. 하루는 선생님이 이런 질문을 했다. “두 가지 일이 있다. 첫 번째는 지루하고 발전이 없는 단순한 일이지만 죽을 때까지 안락한 집과 안정된 소득을 보장받는다. 다른 하나는 재미있고 발전 가능성이 많으며 때에 따라 큰 부자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거지가 될 확률이 무척 높다. 어떤 일을 택하겠는가?” 
 그 반에는 다양한 연령과 인종,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거의 대부분 첫 번째 일을 택했다. 안정적이고 잃을 것이 없다는 이유였다. 기권한 사람도 있었는데 두 번째 일을 굳이 택한 것은 나뿐이었다. 일부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 당황스러웠으며 단언코 멋있어 보이려고, 튀어보려고 한 대답은 아니었다.
 왜 그 일을 택했냐는 질문에 짧은 영어실력으로 더듬더듬 말했다. “Because I have nothing to lose."  나는 학비를 제외하곤 거의 무일푼 혈혈단신이었기 때문에 그 대답은 진심이었다. 그 당시 내가 가진 걸 모두 빼앗긴다해도 그다지 낙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 소지품은 값 비싸지 않았으므로 아쉽지 않았고 잠은 친구네서 자면 될 것이며 카페나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면 입에 풀칠은 가능했을 것이다.
선생님은 용감하고 똑똑한 선택이라며 칭찬해 마지않았다. 나도 약간은 우쭐해서 앞으로 멋지게 펼쳐질 내 인생을 그려봤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 말을 지키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20대 중반을 막 지난 지금, 나는 남들이 보기에 쿨하고 안정적으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때론 공연을 보러가서 방방 뛰어보기도 하지만 몇 년 째 똑같은 머리스타일과 옷 스타일을 고수하고, 가끔은 유행을 타보기도 하는 소위 쿨한 여성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예전 “I have nothing to lose."를 말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해준다. 비슷한 또래인 것 같은 저자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책에 그녀에 대한 설명이 더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녀의 글에 공감이 간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20대들이 낭만과 열정을 되찾기를 스스로의 각성하기를 촉구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쿨한 충고가 아닌, 진실한 열의가 담긴 같은 20대에 대한 따뜻한 염려의 마음으로 보여진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20대들에게 20대다움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쿨한 위선과 가식에 휩싸이지 말고 자신의 가슴이 원하는 것을 쫓으라는 저자의 말이 가슴 깊이 박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