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TV아침프로에 나온 이 할머니를 보고 꽤나 놀랐다. 화장기없는 뒤로 쪽진 머리의 구식 할머니 원피스를 입고 나온 모양새가 요즘 유행과는 거리가 있어 이 분이 마치 70년대에서 잠깐 나왔다 하더라도 곧이 믿어질 정도였다. 약간 아래로 처진 눈매가 마냥 선량해보여 생전 처음으로 의사란 직업에 질투심이 일었다. 우리 사회에는 의사라는 신분에 대한 주저없는 과신이 있다. 그들의 고소득 전문직이란 감투에는 질시의 눈총을 퍼부으면서도 동시에  이 직업출신의 유명인에게는 무조건적인 존경을 바치곤 한다.  솔직히 그런 풍토가 마음에 안들었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직업처럼 더럽고 험난한 수련과정을 거쳐야하는 일도 없음을 또 전공의가 되더라도 하루종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그 협소한 일상이 지독히 지루해 보였다. 그런데 이 할머니의 인생을 들여다 보니 의사라는 직업이 엄청나게 탐나는 직업임을 깨닫게 되었다.

조 할머니는 서울 시립 아동병원과 홀트 아동복지회의원에서 부모없는 아이들을 입양하는 과정까지 진료하고 관리해온 의사였다. 50여년을 같은 일을 해오며 그녀가 겪은 아름답고 한편으로 슬픈 이야기들, 그리고 그간 여러모로 도움을 준 사람들에 대해 쓴 글이 이 책이다. 나는 이 책이 삼성출판사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저으기 걱정이 되기도 했다, 왜냐면  이 출판사는 어린이 세계명작 문고를 낸 아동도서 출판사로 기억되었기 때문이다. 책의 활자도 큼직해서 어린이책이 맞았다. 그런데 책을 읽어내려가니 잘 쓰인 어린이책만큼 훌륭한 책도 없다라는 생각을 했다. 아동틱한 단점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쉽게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매끄러운 글은 책 내용의 감동을 10배는 더하고 있는 것이었다. 책은 크게 세부분으로 나뉘는데 희망가득한 해피엔딩의 이야기들이 1부에, 가슴아팠던 사례들이 2부에, 그리고 진료를 해오며 알게된 참된 주변인들에 대한 회고와 감사가 3부에 들어있다.

오후 나절까지 책을 다 읽고나니 눈두덩이가 뻐근했다. 이런,  책보고 이렇게 눈물콧물 흘리기도 첨이었다. 실제로 이 책은 의사할머니 이야기가 아니다. 더 편하고 돈 많이 벌 인생을 선택하지 않고 이 자리에서 한 평생을 살아냈다는 사실에 존경을 표하게 된다. 하지만 의사는 의원의 직원이었고 할머니 말대로 단지 그 상황에서 소임을 다해냈을 뿐일 수 있다. 이 책은 입양에 관한 이야기다. 입양에 관한 가감없는 눈물의 스토리들이다. 그리고 가슴으로 아이를 낳아 진정한 부모가 되는 과정의 감동적인 이야기들이며 그런 양부모 밑에서 훌륭히 성장한 입양아들의 이야기이다. 이 책에 나오듯이 우리가 단 한마디 만을 바꾸어도 그 차이가 확연해지는 노력을 한다면 좀더 깨인 눈으로 이 입양 문제에 접근 할 수 있을 것이다. ’버려진’ 아이가 아니라 ’발견된’ 아이라고. 젊을 때는 이렇게 생각도 했었다. 일저지르는 무지랭이들은 따로 있고 뒤치닥거리하는 사람도 따로 있어야되나. 그런데 당장 소속없이 태어나는 죄없고 가엾은 아이들을 돌보자면 이런 곳의 소리없는 봉사자들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더욱 그들의 노고가 값져보인다. 흐믓한 얘기들이 많다.  주위를 돌아볼수 있게 만드는 귀중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