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라, 우리나라에선 고등어라면 값싼 생선의 상징이다. 그래서 서민의 밥상에 양질의 단백질을 공급하는 착한 생선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그런데 그 고등어를 먹지 않는다고... 독일에서 오랜기간 살아온 중년 여성의 에세이집치고 제목이 자뭇 생소하고 신기롭다. 고어조의 명령어를 쓴 것도 재미있다. 

호기심을 잔뜩 불러일으키는 책 제목을 대하고 또한 독일남성과 결혼하여 독일에서 수십년간 살아왔다는 한국 아줌마의 이야기라서 한번 더 눈길이 간다. 닥종이 아줌마이야기도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았나. 그런데 이 한국아줌마는 환경에 대한  관심과 이차대전후 독일의 보상문제나 현재 독일 사람들의 과거인식에 이르기까지 옹골찬 자기 생각을 가지고 실천하는 아줌마였다.

책의 전반부에는 연하의 독일남자와 결혼해 예기치 않게 준비전에 생긴 아이를 기꺼이 낳아 바쁘게 지조있게 키워오면서 느낀 생각과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펼쳐진다. 알고보니 고등어를 금한다는 말은 자국땅에서 제철에 난 먹거리를 먹자는 이야기를 저녁식탁에서 주고받다가 나온 한마디였다. 사실 책을 읽기전 소개글에서 난방을 하지않고 온수도 쓰지않는다는 얘기를 접하고 얼마나 환경의식이 철저하면 한겨울의 추위속에 난방과 온수사용없이 견딜수 있을까하고 무척 놀랐다. 근데 약간 부풀려졌던지 책을 읽어보니 독일의 일반가정엔 거실만 난방을 하고 침실에는 난방을 하지 않는 것이 관습이란다. 그리고 온수로 목욕하는 것도 물받아놓고 하는 목욕이 부담스러워 자주 못한다는 얘기다. 이건 역시 우리들도 똑같이 경험하는 바가 아닌가. 욕조가 있지만 일년을 가도 물가득채우고 퐁당퐁당 목욕을 즐기기엔 물값과 보일러이용이 영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니까. 이정도면 뭐 그리 환경운동가랄 수 없을 것 같은데.

하지만 이 부부가 자동차없이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는 것에는 반론이 없겠다. 장을 볼 때나 학부모모임에 참석하러 아이들 학교에 갈 때 그들은 자전거를 타고 갔다. 어떨 땐 자동차를 탄 사람과 다른 어느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을 때도 같이 출발했지만 자전거를 타고가 먼저 약속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난 여름 북유럽을 돌아볼 때 유난히 자전거를 탄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특히 덴마크에는 자전거가 전적으로 생활화되어 있어서 심지어 의회청사로 쓰이는 옛 궁에도 자전거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 의원들도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한단다.  

저자가 아이양육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가족과의 시간을 위해 자신의 일을 주장하지 않는 태도는 많은 공감을 불러온다. 물론 젊은 시절에  자신의 박사학위에 걸맞는 좋은 직장을 얻었다면 자신의 인생이 지금의 모습과는 달라졌을 것이란 말도 솔직하다. 그래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의 풍요로움이 더 소중함을 아는 자세에 점수를 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어쩐지 젊은 날의 나의 고민을 들여다 보는 듯하기 때문이다. 나역시 결혼과 더불어  바로 생긴 아이때문에 한창 잘 나가던 시기의 이력을 과감히 접었다. 집근처에 다행히 당시로선 시설이 좋은 어린이집이 있었지만 어느날 저녁 8시에 끝나는 박사과정 수업을 마치고 부리나케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도착해보니 아이혼자만 덩그러니 구석에서 앉아있고 당번인 선생님 두명은 앞쪽에서 마지막 아이가 돌아가길 기다리며 수군수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마음으로 눈물을 뚝뚝 흘렸었다. 항상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기보다 용기있게 가족을 위해 나를 위한 시간을 포기하는 것이 그당시 나에겐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되었다. 이 책의 저자처럼 나도 내 선택을 결코 후회한 적이 없다. 물론 내자신에게 투자된 가치가 나의 장년기에도 사회적으로 환원되지 못한 것이 경제적이지 못할 수 있겠지만 나는 가정속에서 나름대로 사회와 통하는 여러가지 길을 찾았고 내목소리를 내는데 게으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여러 점에서 저자의 생활과 생각에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완경의 시기에 남편과 스포츠댄스강좌에 참여하며 숨겨진 끼를 발휘하고 살고 있는 모습은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하다. 평생에 남편과 손붙잡고 춤출 기회가 별로 없는 것이 한국여성들이다. 나로 말하자면 그래도 운이 좋았던 것이 오래전 아이들이 어릴 때 온가족이 함께하는 영어마을의 프로그램에서 부부가 손잡고 춤을 출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 이 때 짧은시간에 추었던 브루스가 기억에 짠하니 남아있기 때문이다. 춤이란 온몸으로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이라는데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이 참에 나도 이런 강좌에 등록을 해버려?

책 후반부에는 독일의 전후 보상문제에 관한 독일인들의 사고를 짐작할 수 있게해주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아울러 한국에 대한 일본의 보상문제를 바라보는 일본인의 시각과 그에 대처하는 한국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볼 좋은 기회도 있다.  나는 덴마크를 여행하면서 마치 나치의 후예처럼 보이는 한무리의 소년들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 소년들은 우리 일행이 탄 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멀찍이서 쳐다보다 자전거를 타고 무리를 지어 잽싸게 꺾어지는 길로 핸들을 돌려  우리차를 향해 손가락으로 퍽큐를 날리고 달아났다. 다수의 동양인들을 한꺼번에 목격한 그들에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짐작이 가는 순간이었다. 이차대전 당시 1순위로 독일에 점령당했던 덴마크는 나치독일의 영향권에 쉽게 놓일 수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나치의 망령이 독일 어딘가에 남아있다면.  우리가 일본에게 바라는 바는 일본인의 입장에선 과거일뿐일지 모른다. 더우기 그들은 간신배와 매국노가 저지른 국권상실을 온국민이 원했던 역사로 잘못 배워온 것이다. 심지어 기자라는 신분의 일본인조차도. 일본에도 우리의 현실을 잘아는 지성인들이 있고 그들의 노력을 도우는 방법을 쓰는 것이 현명한 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생각있는 지성들의 목소리는 너무 모기소리라는 생각을 할 때가 허다하지만 정책적으로 그들의 생각을 찾아내고 그들의 목소리를 확성기로 다시 내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세상이 조금은 바뀔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인터넷으로 단체행동하는 것도 자칫 자못하면 쇼비니즘이 될 수 있을테니까.  어려운 문제지만 공존을 선택하는 사람이라면 늘 염두에 두었으면하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