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로 책을 받았다. 아이에게 열어보라고 했더니 호기심에 꺼내보다 슬그머니 내 앞으로 밀어놓고 제 방으로 들어간다.
역사책을 싫어한다. 초반에 너무 어려운 역사책을 세트로 사준 게 화근이었다. 억지로 .. 얼마나 읽었냐고, 몇 권째 읽고 있느냐고 꼬박꼬박 체크한 게 더 큰 엄마의 실수였다. 
아이는 역사책이 재미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엄마는.. 그런 아이가 이상했다. 역사가 얼마나 재밌는데..
엄마는 초등학교 저학년때 삼국유사, 삼국사기를 30번씩은 더 읽었다. 
그런데.. 내 딸이 역사를 싫어하다니!! (상처다~~! 아니.. 이건 재앙이다!!) 
이 엄마가 어릴 적 역사라는 걸 처음 접한 계기는 사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통해서가 아니었다. 
밖에서 뛰어놀다가도 해질녘 어스름이 가까워지면 땀냄새 풍기며 집으로 뛰어 들어와 TV앞에 앉았었다.
"하늘나라 해모수 오륜거 타고 단군성제 이룩하신 옛터를 찾아 오색의 무지개로 궁궐 지으니 버들아씨 예쁜 아씨 왕비되었네~"라는 인형극 [동명성왕]의 주제곡을 따라부르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뛰는 건지 걷는 건지 알 수 없었던 인형들의 몸놀림이 불혹을 넘긴 지금에도 이렇게 생생하니 참.. 

요즘 KBS에도 그런 프로그램이 있었나 보다. [역사야 놀자]는 KBS에서 방송됐던 어린이 대상 역사 프로그램의 제목이다. 
이 책이 그 내용을 그대로 옮겼는지 어쨌는지는 아직 확인해 보지 않았다. 
책은 책으로서 재미있었다. ’위대한 왕의 이름, 대왕세종’, ’비운의 왕, 광해군’, ’무를 중시한 정조대왕’, ’조선의 창, 경국대전’, ’조선의 대학, 성균관’, ’천재 화가, 김홍도’, ’시계왕국을 만든 장영실’, ’최신식 어류백과사전, 자산어보’, ’조선판 GPS, 대동여지도’.... 이순신, 곽재우, 신유, 이지함, 박문수, 김만덕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러고 보니 드라마나 역사다큐멘터리 속에서 아이가 접했던 인물도 있고, 정약용이나 김정호는 아이가 즐겨 읽던 위인전 속의 인물이다. 김만덕은 어린이 논술잡지에서 읽고 무척 흥미로워 하던 여성...(아이는 [역사야 놀자 1]을 다 읽고 난 후 5만원권에 신사임당이 아니라 김만덕을 넣었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돈하고 김만덕하고 연관성이 높기 때문이란다. 일부분은 나도 공감이 갔다!! ㅎㅎ~)

나는 정조대왕 이야기를 읽다가 <선원보략>에 실려 있다는 정조대왕의 어진을 남편과 아이에게 보여 주었다. ㅎㅎ~
근래에 후세에 의해 그려진 학자적인 면모의 어진과는 사뭇 다른 가히 <수호지>의 ’양산박’에서 잠깐 외출 나온 분인듯 보이는 용안이라니..
활을 쏘아 50발 중에 49발을 명중시키는 일이 빈번하고, 결국 과녘이 너무 심심해 보다 정밀하고 어렵게 새로 그려넣어 보다 난이도 높은 활쏘기에 도전했었다는 정조대왕의 이야기가 새삼스럽다. 
저녁밥을 짓는 사이에 내려놓은 책을 아이가 가지고 가서 읽는다. (엄마의 작전은 성공이다!!!)
저녁밥 먹으라는 소리에 책을 들고 나온 아이는 "광해군 진짜 불쌍하다."고 말했다.
뒤이어 "연산군은 쫌 혼나도 되는데.. 광해군은 진짜 불쌍하다. 전쟁때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눈병 난 걸 성질이 못돼서 눈이 빨갛다고 하고.. 정말 너무들 했네~."
(너는 광해군이 억울하구나. 난 정조대왕이 노론 대신들에게 당했던 일을 읽으며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 시절 당했던 멸시와 퇴임 후 결국 법살(法殺) 당한 사실이 생각나 더욱 원통했는데... )

아이가 이덕무의 이야기를 엮은 [책만 보는 바보]에서 만났던 무인 백동수도 등장하고..
출산휴가나 형벌제도, 인사청탁 이야기, 조선시대 엄친아였던 이이 이야기..화가 김홍도(이 이야기에서 새삼 ’정조대왕’의 혜안과 힘이 느껴진다!!!) , 조선이 장영실을 버린 배경 등등.... 인물과 사건을 통해 역사와 당시의 사회상, 가치관, 통치이념 등을 배울 수 있도록 접근하고 있어 흥미와 교육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지 않고 있다. 
학창시절 " 정도전 경국대전", "정도전 경국대전"이라고 딸딸 외웠던 경국대전이 이 책에서는 참 흥미롭게 설명되고 있어서 반가웠다. 
너무 크지 않은 사진은 딱 필요한 만큼만 실려 있고, 글자 수도 적당해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이 읽기에 안성마춤이다. 
간간이 실려있는 삽화도 뒹굴뒹굴 책을 읽던 아이를 즐겁게 하는 요인이 되어주는 것 같다. 
그림이 정말 귀여워서 사진으로 옮겨 보았다.


이 책은 1권 조선시대 편인데.. 큼직큼직한 역사의 퍼즐조각 같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조선 역사의 큰 인물과 굵직굵직한 사건틀을 이해하고.. 디테일한 부분들은 다른 책이나 매체들을 통해 채워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역사 속으로 깊숙히 끌어들이는 매력과 흡인력이 이 책의 힘이다. 
결코 가볍거나 녹록치 않은 소재들을 흥미진진하게 다루며 역사책에 발을 담그게 하고야 말 것 같은 책..

빠져~~ 빠져~~ 빠져 버릴 것 같은 책이다. 반갑다. 같이 놀자!!

역사야놀자,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