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김영하 작가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TV의 한 프로그램의 영향이 크다.

사고의 폭이 넓고 유연하다고나 할지, 거기에다가 언뜻언뜻 비치는 여성에 관한 생각들이 다른 남자들과는 좀 달라보여서 였다.

 

게다가 우리나라 문학상을 다 휩쓸었다니, 뭔가 이유가 있겠지 싶었다.

그러나, 그가 쓴 책들의 서평들을 보니, 내 취향이 아닌 게 많아서 선택한 것이 발표된지 좀 되었으나,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다룬 <검은 꽃>이었다.

 

조정래 작가가 <아리랑>에서 일제 강점기하 우리 동포들의 중국,하와이,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과정을 처절하게 묘사해서 힘없는 국가의 국민들의 삶이 어떻게 송두리째 흔들렸나를 잘 보여주었는데, 김영하 작가는 멕시코 이주를 어떻게 그려냈을까?

 

가족이 자신을 무당에게 넘겼다는 상처를 간직한 채, 무당의 일을 돕다가 눈을 피해 도망쳐 외국인 신부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신부가 되었으나 결국은 자신이 할 일이 아니라 생각하고 멕시코 이주 노동자 모집에 응하여 에네켄 농장에 가게 되는 전직 신부, 역관 집안으로 호화롭게 살다가 살림살이를 다 말아먹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스페인어를 배워 통역으로 멕시코로 온 통역사, 왕실의 먼 친척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멕시코에 가면 왕이 그곳을 다스리는 사람들에게 문서를 통해 자신을 돌보아줄 거라는 기대로 가족들을 데리고 떠난 몰락한 선비, 해체된 군인들, 이름도 없이 떠돌다가 멕시코로 가는 배 안에서 만난 전직 군인으로부터 이름을 받게 된 소년, 소매치기등 많은 인물들이 나온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의 구석진 곳, 햇볕이 내리쬐는 물도 없는 곳에서 밧줄의 원료로 쓰이는 에네켄이라는 가시가 돋힌 거대한 선인장을 잘라서 운반하는 막노동에 겨우 죽지 않을 만큼 주는 임금과 집이라고 하기엔 뭐한 열악한 환경, 4년간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없는 계약서...

 

이 와중에서도 끈질긴 우리나라 사람들은 파업과 시위를 통해 조금은 나아진 노동조건을 확보하고, 하와이로 집단이주를 추진하기도 하지만, 미국의 난색으로 불발로 그치고, 과테말라 게릴라에 참여하면 성공시 엄청난 금액을 준다는 말에 전직 군인들을 중심으로 밀림지대로 이동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자 같이 온 사람들을 버리고 가버리고 만다.

 

일제강점기에 온몸을 바쳐 일제와 싸우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오히려 더 앞장서서 자기나라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여기서도 여지 없이 배신을 하는 인물들이 나온다.

 

이 와중에 몰락한 양반의 딸 연수와 김이정의 결말은 허무하기조차 하다.

 

 자신의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 채 현지 마야인에 의해 길러져 마야말만 하는 아들,중국인에게 잡힌 연수를 구해 내 함께 살고 있는 박정훈의 말없는 부탁에 의해 발길을 돌린 후 용병으로 전사한 김이정과 이곳저곳 떠돌다 박정훈이 남긴 재산을 불려 수전노가 되어 삶을 마감한 연수..

그래서 검은 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