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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丁若鏞.1762.6.16.영조 38∼1836.헌종 2)

조선 후기의 실학자. 자는 미용(美鏞). 호는 다산(茶山)ㆍ사암(俟菴)ㆍ여유당(與猶堂)ㆍ채산(菜山). 근기(近畿) 남인 가문 출신. 그가 태어난 양근(楊根: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군) 땅 일대는 뒷날의 연구자들로부터 실학자로 불리게 된 일군의 학자들이 새로운 학풍을 형성해 가던 곳이었다. 그의 친인척들도 이곳의 학풍을 발전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는 진주목사(晋州牧使)를 역임했던 정재원(丁載遠)과 해남윤씨 사이에서 4남 2녀 중 4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음사(陰仕)로 진주목사를 지냈으나, 고조 이후 삼세(三世)가 포의(布衣: 벼슬이 없는 선비)로 세상을 떠났으니, 비록 양반이며 그 이전까지는 대대로 벼슬을 했지만, 그의 집안은 당시로서는 권세와 별로 가까운 처지가 아니었던 셈이다. 그의 생애는 대략 다음과 같이 네 단계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 단계는, 출생 이후 과거를 준비하며 지내던 22세까지를 들 수 있다. 그는 부친의 임지인 전라도 화순, 경상도 예천 및 진주 등지로 따라다니며 부친으로부터 경사(經史)를 배우면서 과거시험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16세가 되던 1776년에는 이익의 학문을 접할 수 있었다. 때마침 이 때 부친의 벼슬살이 덕택에 서울에서 살게 되어, 문학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치던 이가환(李家煥)과 학문의 정도가 상당하던 매부 이승훈(李承薰)이 모두 이익의 학문을 계승한 것을 알게 되었고, 그리하여 자신도 그 이익의 유서를 공부하게 되었다. 이익은 근기학파의 중심적 인물이었던 것이다. 정약용이 어린시절부터 근기학파의 개혁이론에 접했다고 하는 것은 청장년기에 그의 사상이 성숙되어 나가는 데 적지 않은 의미를 던져주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정약용 자신이 훗날 이 근기학파의 실학적 이론을 완성한 인물로 평가받게 된 단초가 바로 이 시기에 마련되고 있었다.

정약용의 생애에서 두 번째 단계는, 1783년 그가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한 이후부터 1801년에 발생한 신유교난(辛酉敎難)으로 체포되던 때까지를 들 수 있다. 그는 진사시에 합격한 뒤 서울의 성균관 등에서 수학하며 자신의 학문적 깊이를 더하였다. 이 때 <대학(大學)>과 <중용(中庸)> 등의 경전도 집중적으로 연구하였다. 그리고 1789년에는 마침내 식년문과(式年文科) 갑과(甲科)에 급제하여 희릉직장(禧陵直長)을 시작으로 벼슬길에 오른다.

이후 10년 동안 정조의 특별한 총애 속에서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 경기암행어사(京畿暗行御史), 사간원사간(司諫院司諫), 동부승지(同副承旨)ㆍ좌부승지(左副承旨), 곡산부사(谷山府使), 병조참지(兵曹參知), 부호군(副護軍), 형조참의(刑曹參議) 등을 두루 역임했다. 특히, 1789년에는 한강에 배다리〔舟橋〕를 준공시키고, 1793년에는 수원성을 설계하는 등 기술적 업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한편, 이 시기에 그는 이벽(李檗)ㆍ이승훈 등과의 접촉을 통해 천주교에 입교하게 되었다. 그는 입교 후 그의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교회 내에서 뚜렷한 활동을 전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입교는 자신의 정치적 진로에 커다란 장애로 작용하였다. 당시 천주교 신앙은 성리학적 가치체계에 대한 본격적인 도전으로 인식되어 집권층으로부터 격렬한 비판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천주교 신앙 여부가 공식적으로 문제시된 것은 1791년의 일이다. 이후 그는 천주교 신앙과 관련된 혐의로 여러 차례 시달림을 당해야 했고, 이 때마다 자신이 천주교와 무관함을 변호하였다. 그러나 그는 1801년의 천주교 교난 때 유배를 당함으로써 중앙의 정계와 결별하게 되었다.

정약용의 생애에서 세 번째 단계는, 유배 이후 다시 향리로 귀환하게 되는 1818년까지의 기간이다. 그는 교난이 발발한 직후 경상도 포항 부근에 있는 장기로 유배되었다. 그러나 그는 곧 이어 발생한 ‘황사영백서사건(黃嗣永帛書事件)’의 여파로 다시 문초를 받고 전라도 강진(康津)에서 유배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는 이 강진 유배기간 동안 학문 연구에 매진했고, 이를 자신의 실학적 학문을 완성시킬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였다. 그의 강진 유배기는 관료로서는 확실히 암흑기였지만, 학자로서는 매우 알찬 수확기였다고 할 수 있다. 많은 문도를 거느리고 강학과 연구, 저술에만 전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중국 진나라 이전의 선사(先秦) 시대에 발생했던 원시 유학을 집중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이를 기반으로 해서 성리학적 사상체계를 극복해 보고자 하였다.

또한, 그는 조선왕조의 사회현실을 반성하고 이에 대한 개혁안을 정리하였다. 그의 개혁안은 <경세유표> <흠흠신서> <목민심서>의 일표이서를 통해 제시되고 있다. 이들 저서는 유학의 경전인 육경사서에 대한 연구와 사회개혁안을 정리한 것으로 가장 주목받고 있다. 정약용 자신의 기록에 의하면 그의 저서는 연구서들을 비롯해 경집에 해당하는 것이 232권, 문집이 260여 권에 이른다고 한다. 그 대부분이 유배기에 쓰여졌다.

정약용의 생애에서 마지막 단계는, 1818년 57세 되던 해에 유배에서 풀려나 생을 마감하게 되는 1836년까지의 기간이다. 그는 이 시기에 향리에 은거하면서 <상서(尙書)> 등을 연구했으며, 강진에서 마치지 못했던 저술작업을 계속해서 추진하였다. 매씨서평(梅氏書平)의 개정ㆍ증보작업이나 아언각비(雅言覺非), 사대고례산보(事大考例刪補) 등이 이 때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회갑을 맞아 자서전적 기록인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을 저술하였다. 그 밖에도 자신과 관련된 인물들의 전기적 자료를 정리하기도 했으며, 500여 권에 이르는 자신의 저서를 정리하여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를 편찬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 그의 생애는 결코 순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전 생애를 통해 위기에 처한 조선왕조의 현실을 개혁하고자 했으며, 그 현실 개혁의 이론적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선진유학을 비롯한 여러 사상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가 유배과정에서 불교와 접촉했고, 유배에서 풀려난 후에는 다시 서학에 접근했다는 기록도 이와 같은 부단한 탐구정신의 일단을 보여주는 사례로 보인다. 그는 학문 연구와 당시 사회에 대한 성찰을 통해서 실학사상을 집대성했던 조선 후기 사회의 대표적 지성이었다.

【유적지】

- 정약용 생가 및 유물관 : 경기도 남양주시 양수리

- 다산 공적비 : 전남 강진 만덕리

- 다산초당 : 전남 강진 소재. 다산유적보존회 재조성

- 정약용 묘 : 경기도 광주군 마현

【저서】*<목민심서(牧民心書)>(48권), <흠흠신서(欽欽新書)>(30권), <강역고(疆域考)>(10권) 등 540여 권.

【연보】

1762 : 영조38년 경기도 광주군 마현(馬峴) 생.

1776 : 풍산(豊山) 홍(洪)씨와 결혼

1789 : 정조13년 문과 급제

1791 : 이벽(李檗)으로부터 처음 서교(西敎)에 대해 설명 받음

1795 : 병조참의

1797 : 곡산부사(谷山府使)

1799 : 형조참의

1801 : 순조 원년 신유사옥(辛酉邪獄)으로 이승훈, 정약종(鄭若鐘) 등이 사형당하고 다산은 강진으로 귀양감. 이후 19년간 독서와 저술생활로 <아학편훈의(兒學編訓義)>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 <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 등 완성

1808 : 다산(茶山)으로 옮김

1818 : 귀양에서 풀려남. <목민심서(牧民心書)> 완성

1819 : <흠흠신서(欽欽新書)> 완성. 이후 고향서 저술과 신앙생활.

1836 : 2월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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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삶>

▶경(敬), 신독(愼獨) : 정약용은 당호를 여유당(與猶堂)이라 했다. 이는 노자의 <도덕경>의 한 대목인 "여(與)함이여, 겨울 냇물을 건너듯이, 유(猶)함이여, 너의 이웃을 두려워하듯이"라는 글귀에서 따온 것으로, 조심조심 세상을 살아가자는 것이다. '여'는 겨울 냇물을 건너듯 하고, '유'란 사방을 두려워하는 듯하다의 뜻이다. 겨울 냇물은 무척 차갑다. 뼈 속까지 추위를 느낄 것이니,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냇물을 건너지 않을 것이다. 또 세상이 두려운 사람은 함부로 행동할 수 없다. 자기를 감시하는 눈길이 항상 따르니,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는 남인의 가계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조상이 당쟁의 중심인물이 되지 않았음을 자랑했고, 그 아들들에게도 그런 일에 가담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는 문벌과 당색의 타파를 강력하게 주장했고, 인재의 고른 등용을 역설했다.

▶인내심, 애민 사상 : 다산은 27세에 과거에 급제한 후, 벼슬길에 들어 학문과 문장이 뛰어난 훌륭한 정치가로서 정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그러나 벼슬아치들의 시기 질투와 서학을 믿었다는 죄로 39세에 강진으로 귀양살이를 가게 되었다.

귀양살이를 하던 어느 날, 높은 벼슬에 있던 친구 김이교를 만났다. 친구는 귀양살이를 위로하는 이야기 끝에 무슨 부탁할 말이 없느냐고 물었다. 다산은 끝내 아무런 부탁도 하지 않았다. 친구가 떠날 때 다시 한 번 묻자, 친구의 부채에 자신의 마음을 나타내는 시를 써 주었다. 다산은 억울한 일을 당했지만 때를 기다리면서 조용히 참았던 것이다. 더구나 18년의 고독하고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고 자기 수양에 힘쓰며, 오히려 나라와 민족을 걱정하는 많은 책을 저술하였다.

▶부부애 : 근엄한 유학자였던 다산에게는 그리움이나 아쉬움에 대한 진솔한 표현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부인 홍씨의 사랑의 표현에는 우리를 감동케 하는 부분이 있다. 귀양살이를 한지 10년째 되던 해에, 홍씨가 그리운 정을 표시하기 위해 시집올 때 입고 왔던 다홍치마 다섯 폭을 다산에게 보냈다. '당신도 내가 그리울 것이요, 나도 당신이 그립지만 달리 정을 표하고 달랠 길 없으니, 신혼처럼 즐겁던 때를 회상하면서 장롱 속에 고이 간직했던 빛바랜 다홍치마를 사랑의 정표로 보낸다.'는 뜻이었으리라. 얼마나 은근하고 그윽한 사랑의 표시인가.

다산은 그 치마를 재단하여 두 아들에게는 교훈의 글을 써주고, 외동 딸에게는 화조(花鳥)를 그리고 화제(畵題)를 적어 주면서, 화목한 가정을 이루며 살라고 했다.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자녀에게 부부의 사랑을 넘겨주는 다산의 자녀 사랑이 감동적이기만 하다. 언제 폭풍이 몰아칠지 모르는 정치현실 속에서 조심조심 세상을 살아간다는 뜻으로 당호를 여유당이라 했다.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에도 오직 경세학과 목민학의 정리에 골몰했을 뿐, 결코 정치나 조정 얘기는 입 밖에 내지도 않았던 그는 더욱 언행을 신중히 하였다.

정약용은 자신을 모함하던 이기경이 경원으로 유배되었을 때, 늘 이기경의 집을 찾아가 그의 가족을 위로하고, 그의 어머니 상사에는 1천냥이라는 많은 부조를 하기도 했으며, 곡산 부사로 부임했을 때에는 수령의 부정에 항의하는 이계심을 용서하여 민란을 막기도 하였다. 그는 반대파의 불평에 적대의식으로 대하지 않고 끝까지 부드럽게 대했다.

▶교훈 : 정약용은 이벽, 이승훈으로부터 서학을 접하고 신학문 연구에 열중하였다는 죄목으로 목만중, 이기경 등의 모략을 받아 충청도 헤미로 귀양을 갔다. 다시 진산의 천주교도 윤지충이 부모의 제사를 지내지 않는 사실이 탄로나 공서파의 모함으로 금정찰방으로 좌천되었고, 주문모 신부 사건으로 벽파의 모함을 받아 이가환, 권철신, 이승훈, 정약종 등이 옥사하고, 정약용은 18년의 긴 유배길에 오르게 된다.

고독하고 어려운 귀양살이에도 실망하지 않고 수양에 힘쓰며, 오히려 나라와 민족을 걱정하며 저술에 전념하여 공직자의 귀감이 되는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우리는 정약용으로부터 자기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묵묵히 극복해 나가는 인내심을 본받을 수 있다.

다산과 부인 홍씨가 보여준 사랑의 표현 방법을 오늘날 신세대들의 사랑의 표현 방법과 비교하면서 어느 방법이 더 의미있게 느껴지는가에 대해 의견을 나누도록 한다. 둁 정약용은 그의 조상이 당쟁의 중심인물이 되지 않았음 을 자랑했고, 그 아들들에게도 그런 일에 가담하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또 문벌 당색의 타파를 주장했고, 인재의 고른 등용을 역설했다. 남들이 자기를 헐뜯으면 자명(自明)하다는 상소만 올렸을 뿐이며, 자식들에게 벼슬을 위한 학문보다는 백성을 위한 실제적인 학문을 할 것을 당부하여 애민정신을 누누이 강조하였다.

<다산의 문학세계> - ‘횡설수설’(동아일보.1989. 1. 21)

영조－헌종 간에 실학을 집대성한 가장 위대한 학자로 평가되고 있는 정약용은 어릴 때부터 시재에 뛰어나 사실적이며 애국적인 많은 작품을 남겼다. 다산은 “나는 조선인이므로 조선시를 즐거이 쓴다”(我是朝鮮人甘作朝鮮詩)고 말해 그의 민족 주체적인 문학정신을 표현했다. 이와 같은 문학관 아래서 그는 많은 서정시와 자연시, 그리고 우화시를 남겼다. 그는 한시를 통해 당시 문란한 사회 질서를 고발하고 민중의 피폐상을 서슴없이 그려내 보였다.

조선조 후기 한시(漢詩)를 통해 표출한 다산의 문학세계는 중국 중심의 모화사상(慕華思想)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엿보이고 있다. 비록 한시를 통해 문학 작업을 수행한다 하더라도 그 표현이나 내용은 민족적 서정과 직결되는 차원에서 정신세계를 구현하려고 노력하였으며, 민족문화의 창달을 위해 18년 동안 유배지였던 전남 강진에서 우리 민요와 판소리를 시상(詩想)에 담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조선 후기 작품 중 한시 가운데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다산시(茶山詩)는 현재 남아 있는 것만도 총 2천5백여 수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다.(하략)

<새 학문 펴기 위한 고난의 한평생> - [소년동아](1979. 2. 26)

정약용은 문장에 뛰어났고 경제학자로도 뛰어난 분이다. 그는 수원성을 쌓을 때 서양의 기술을 이용했으며 <산림 경제> <목민심서> 등 8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다만 그가 나던 해에는 나라에 큰 변괴가 있었다. 당시 영조왕이 노망하여 세자를 뒤주 속에 가두어 죽게 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다산의 부친은 세상이 이렇게 험악한 것을 보자 벼슬을 버리고 지금의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능내리로 내려 가 농사나 지으며 지내려 했다. 다산의 어릴 때 부르던 이름이 ‘귀농(歸農)’으로 부른 것을 보아도 짐작할 만한 일이었다. 4세에 천자문을 배우고 13세에 당 나라 시인 두보의 시를 본따 지은 것이 두보 시보다 뛰어났다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22세에 과거 급제하고 벼슬길에 올랐으나 항상 반대파의 미움을 받게 된 데다 그를 아끼던 정조 대왕이 죽은 후로는 슬픈 운명이 닥쳐왔다.

순조 원년 신유년이었다. 2월 8일 그의 형 정약종이 잡혀 죽고 9일에 그도 투옥되었다. 천주교를 선교하기 위해 압록강을 몰래 건너교 신자들은 더욱 박해를 당하던 때였다. 그때 신자집을 수색하다가 ‘사람에게는 세 가지 원수가 있다.’는 글을 쓴 휴지가 나왔다. 그 글이 바로 정씨 집에서 나온 것이라 하여 이것은 나라를 어지럽게 하려는 큰 凶計라고 몰아서 우선 정약종이 변을 당한 것이다.

이후 그는 18년 동안이나 귀양살이를 했다. 단지 서양에서 들어온 새 학문을 익히는 데 열심이었던 그를 ‘예수교를 믿는다’고 귀양을 보낸 것이다. 57세 되던 8월에야 이태순이란 이가 순조에 상소를 올려 죄가 풀려 본댁으로 돌아왔다. 그때까지 귀양살이를 하던 전남 강진의 다산을 떠난 것이다. 그의 호는 바로 이 고을 이름을 딴 것이다. 오랜 귀양살이를 하면서 지은 책이 우리 나라의 국경을 옳게 밝힌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 우리 나라 江의 근원에 대한 글 <대동수경>, 정치하는 방법을 쓴 <목민심서>, 학문을 닦는 길을 적은 <아언각비(雅言覺非)> 등 오늘날까지도 빛나는 명저들이다.

그가 이처럼 많은 업적을 남겼으면서도 모함을 받은 것은 그의 강직한 성품 때문이었다. 33세 되던 해 경기 암행어사가 되어 연천 현감 김양직과 삭영 군수 강명길의 잘못을 캐어 임금께 보고한 적이 있었다. 김양직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수원으로 묘를 옮길 때 산소 자리를 잡아준 사람이고 강명길은 정조의 어머니 병을 맡아보는 의사였으므로 두 사람 모두 왕의 부모를 받들어서 세력이 당당한 사람들이었으므로 아무도 건드릴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권세에 굽히지 않고 그들의 잘못을 캐어 벌을 받게 한 것이다.

<정약용의 다산초당 복원> - [조선일보](1977. 4. 21)

18년간의 유배살이 끝에 강진 초당(草堂)을 떠났던 다산 정약용의 현지 제자들 18명은 떠나간 스승을 흠모하고 정을 유지하고자 다신계(茶信契)를 맺는다. 그 계목(契目)이 참 멋있다. 해마다 청명(淸明)-한식날 계원은 이 스승이 거처하던 초당(草堂)에 모여 운(韻)을 내어 시를 짓고 이를 작첩(作帖), 다산 선생에게 보낸다. 이날 고기값 한 냥은 계돈에서 내고, 양식 한 되씩은 각자가 가져오게끔 약정돼 있다.

곡우(穀雨)에는 연한 차(茶)잎을 따서 이것을 겻불에 말려 한 근을 만들고 입하(立夏)에는 만다(晩茶)를 따서 떡(단다.團茶) 두 근을 만들어 시찰(詩札)과 더불어 다산 선생에게 부친다. 이처럼 다산이 별세할 때까지 절기마다 스승과 차와 시를 얽어 사은(謝恩)을 했던 것이다. 이 강진 초당(草堂)에서 조촐한 대로 훈훈하고, 소박한 대로 아기자기한 한국인의 멋과 정과 의리가 화합된 한 아름다운 단면을 보는 것만 같아 흐뭇하다. 다산은 이 아름다운 보은 때문에 이 초당을 잊지 못하여 시와 편지로 동암(東庵)의 지붕은 잘 이었는지, 뜰에 심은 홍도(紅桃)는 죽지는 않았는지, 못에 방생한 잉어는 얼마나 컸는지, 차는 철을 놓치지 않고 잘 따는지 하고 항상 맘만은 이 초당에서 배회했던 것이다. 다산이 별세한 지 1백41년만에 헐어 있던 이 다산초당이 보수되어 준공되었다 한다.(중략)

바로 한국 실학의 산실이요 실학의 성지(聖地)이기도 한 이 다산초당은 오늘날 우리 한국인이 상실하고 있는 아름답고 멋있는 인간관계를 입증하는 정신적 유적이기도 하다. 옛 우리 나라에 있어 계란 돈을 늘리는 식산(殖産)의 방법이라기보다는 초당(草堂)이 지켜 내린 다신계(茶信契)처럼 사은(謝恩)하고 화합하고 상부상조하고 풍류하고 흥학(興學)하는 정신적 결속체(結束體)로서 큰 몫을 해 왔던 것이다. ‘동(同)’은 물에 물 탄 것 같고, ‘화(和)’는 국맛을 조화하는 것과 같다 하고, 사람의 습성은 동(同)하지 말고 화(和)해야 한다고 가르쳤던 다산의 정신이며, 그리고 이 다신계(茶信契)에 서린 화(和)와 은(恩)과 멋의 정신도 이 다산초당의 복원과 더불어 한국 사람의 가슴 속에 복원됐으면 하는 맘 간절하다.(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