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6일 반 고흐전 관람을 위해 덕수궁 돌담길을 휘어감은 대기 줄에서
나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
시집이 없었다면… 혼자서 2시간 30분동안 뭘 했을지…
생각만해도 끔찍할 뿐이다.

정말 오랜만에 접한 시집은 신선했다.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네
이성선 시인의 <다리>를 빌려서 김사인 시인은 이렇게 적었다.

너무 빨리 읽고 지나쳐 시를 외롭게는 말아주세요, 모쪼록

이 부분에서 혼자서 얼마나 웃었던지…
시를 외롭지 않게 하기위해 한 글자씩 음미하며 읽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 깊이 묻다>

사람들 가슴에
텅텅 빈 바다 하나씩 있다

사람들 가슴에
길게 사무치는 노래 하나씩 있다
늙은 돌배나무 뒤틀어진 그림자 있다

사람들 가슴에
겁에 질린 얼굴 있다
충열된 눈들 있다

사람들 가슴에
막다른 골목 날선 조선낫 하나씩 숨어 있다
파란 불꽃 하나씩 있다

사람들 가슴에
후두둑 가을비 뿌리는 대숲 하나씩 있다.

사람들마다 감동받는 내용은 틀리겠지만,
난 "깊이 묻다"가 가장 좋았다. 아니 가장 많이 느꼈다고 표현하는게 옳은것이다.

마치 내 마음을… 내 속을 빤히 들여다 보고 적어 놓은것 같아서
몇번을 읽고 또 읽었는지 모른다

아울러 임우기님의 "가만히 좋아하는" 시의 해설 부분이 좋았다.
시를 외롭지 않게 하기위해 한 글자씩 음미하며 읽었지만
내가 놓치고 그냥 지나친 부분에 대해 임우기님이 다시한번 곱씹어
정말로 시를 외롭지 않게 해주었다.

백석은 시인이란,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난 운명을 지닌 존재라고 표현했는데
과연 그런것일까? 라는 궁금증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