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앞의 생 - 에밀 아자르 (로맹 가리)

정확히 책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책을 읽다보면 다른 작가의 책을 인용하는 부분이 많다. 그중 <자기앞의 생. 에밀 아자르> 와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로맹 가리>의 책은 몇 번 접한적이있어 기회가되면 읽어봐야지 했던 책이었는데 먼저 <자기앞의 생>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책의 뒷부분에 실린 "에밀아자르의 삶과 죽음"에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되었다.
에밀아자르라는 이름의 필명을 쓴 실제작가는 로맹가리였다는 사실이다. 로맹가리가 1980년 권총으로 자살했을 당시 남긴 유서가 아니었다면, 지금 우리는 여전히 로맹가리와 에밀아자르라는 작가가 동일한 인물인줄 모른채, 한사람의 작품을 다른 시각과 방법으로 풀이하고 평가했을것이다. 

평생 한번밖에 수여할 수 없다는 공쿠르상을 로랭가리와 에밀아자르의 이름으로 유일하게 두번이나 수상한 그는 왜 자신을 숨기고 다른이름으로 살아왔을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금방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평범하게 살아온 나 또한 지금의 내모습을 전혀 모르는 곳에서 생활하고, 새로운 생을 살고 싶은데 그는 이미 로맹가리라는 ’어떤 작가’라는 고정관념속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써낸 소설 <자기앞의생>의 주인공 모모처럼 작가는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앞의 생>은 부모에게 버림받은 열네 살 소년 모모가 부모가 버린 아이들을 맡아 키우는, 로자 아줌마와 함께 지내던 자신의 생 중 어느 한 시기에 관한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자신을 돌봐주던 로자 아줌마가 뇌혈증을 앓게 되자 이번에는 모모가 로자 아줌마를 돌봐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로자 아줌마가 의식을 잃기 시작했을 때 모모는 아주머니를 아주머니가 평소에 사랑했던 방, 혼자만의 방, 무서운 것이 있을 땐 혼자 숨어들곤 했던 지하실의  방으로 데리고 간다. 로자 아줌마는 거기서 죽었고 그녀가 죽은 지 삼 주일 후, 진동하는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 사람들이 지하실 문을 부수고 들어왔을 때까지 모모는 거기서 아주머니와 자고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수 있다는 것에대해 모모는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새롭게 살아갈 낯선 땅을 찾아가던 길에 모모는 문득 하밀 할아버지가 노망 들기 전에 해주었던 말을 떠올린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는 그 말을. 그리고 모모는 깨닫는다. 손에 쥔 달걀 하나, 그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 로자 아줌마를 죽인 것은 生이지만 그녀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것도 바로 그 신비롭고 경이로운 生이라는 사실 또한.  그건 모모의 깨달음이자 곧 그 책을 읽는 우리들의 깨달음이기도 할 것이다. 

"사람들이 그에게 만들어준 얼굴"이 한 작가를 얼마나 구속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은 내가 그런 시도를 한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이자 그 시도가 성공한 이유이기도 하다는 사실, 그리고 그 "얼굴"은 작가의 작품이거나 작가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