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는여자 - 성수선

정말 정말 오랫만에 느껴보는 전율...
책장을 넘기며 정신없이 밑줄긋기 바쁘고, 감동받는 책을 만나면 너무나 즐겁고 행복하다.
사람마다 책을 통해 느끼는점은 틀리기때문에, 다른사람의 추천에만 의지해서 나에게 맞는 책을 발견하기란 좀처럼 쉽지가 않다.

이번에 읽게된 <밑줄긋는여자>는 나에게 보석같은 책이었다.

성수선씨는 책을 많이 읽는 직장인으로, 그녀의 밑줄 그은 문장들을 자신의 일상속에서... 출장길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과의 대화에서 살아난다고 했다.
그에비해 난, 열심히 밑줄은 긋지만... 머리속에 지우개가 있다보니 세상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현실이다. 꼭, 대화에서 살아나야하는건 아니니까 나 혼자만이라도 감동받는것에 만족하련다.

나에게 필요한 건 충고와 조언, 잔소리와 걱정, 질책과 훈화말씀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지지와 격려’였다. 너는 잘할 거라는, 잘할 수 있다는, 지금까지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거라는, 또 못한다 해도 상관없다는, 그래도 괜찮다는, 그래도 너를, 무조건 너를 사랑한다는 지지와 격려! 난 정말 이런 말들을, 무조건적인 지지와 격려를 절실히 갈망했다 (51)

무.조.건... 무.조.건.적.인. 지지와 격려...
요즘 조금 힘든일이 있었는데, 그때 읽게된 내용이라 몇번을 읽으며 눈물 흘렸는지 모르겠다.  이세상에 딱 한명이라도 무.조.건.적.인 지지와 격려를 보내주는 내.편.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힘을내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다른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인 지지와 격려를 보낼 수 있는 마음 넓은 사람이 되고싶다.

밥도 안되고 돈도 안 되는 소설을 왜 읽어? 어차피 다 지어낸 얘기, 읽어서 뭐해? 괜히 읽어서 이 생각 저 생각 많아지면 피곤하기만 해. (130)

솔직히 이부분에서 많이 뜨끔했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시작했을 무렵 내 머리속에 차지하고 있는 생각이기도 했다.  어려분야의 책중에 나에게 도움되는 책 들만 읽기에도 시간이 부족할것 같아서 소설은 조금 멀리했었다.
그러다 편식하지않고 다양한 분야를 읽어야겠다 싶어 접하기 시작했는데, 그동안 소설에 대한 나의 편견이 심했다는것을 뼈저리게 느끼게되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대화를 할때, 직장밖에서의 자리에서는 자신의 전공에대한 이야기는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같은 분야의 사람끼리의 만남에서도 퇴근후에까지 직장이야기를 한다면 그들의 삶은 얼마나 무미건조할가??

이 책에서는 성수선씨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다는 대학의 공학박사와 소개를 받고 영화를 보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오래전 영화 <해피엔드>에서 아내(전도연)의 불륜현장을 목격한 남편(최민식)은 배신감에 괴로워하다가 급기야 아내를 살해하고 아내의 정부에게 살인 누명을 씌우는 영화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공학박사의 개념없는 질문이 이어졌다
"마지막 장면에서 최민식은 왜 우는 거예요? 다른 남자랑 놀아난 부인을 죽였으면 속이 시원해야지, 왜 우는 건지 도대체 이해가 안돼요....."

성수선씨는 이런 질문을하는 공학박사가 이해가 되지 않았으리라...
그의 감성과 상상력은 안쓰러울 만큼 건조하고 미약했기에 그녀는 그를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남녀관계에서 특히 연인으로 발전가능한 사이나, 이미 연인인 사람이 이렇게 감정이 메말라있다면 그 둘은 과연 만나서 어떤 대화를 하고, 서로 교감을 나눌 수 있을가?

소설을 읽는 게 언뜻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인간을,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데 소설만큼 좋은 게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건조한 피부뿐 아니라 지친 영혼에도 보습이 필요하다...